고딩때 꽤 빡센 동아리 활동을 했다. 찬양 중창을 하는 동아리였는데 어느 정도 빡셌냐면, 1시간 남짓 밖에 안되는 점심시간에 "매일" 30분 정도를 전원(20~30명)이 모여서 연습을 했고, 저녁시간도 일주일에 두 번정도는 모임을 가졌다.
그때는 그게 빡센 건줄 모르고 사명감과 책임감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의무감에 그런 활동을 당연하게 여겼다. 학교도 그렇고 내가 속한 동아리도 그렇고 선후배간의 위계질서가 어마무시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내가 다닌 학교는 이성교제를 담배 및 술과 동일시하였고, 남녀간의 윤리거리를 지켜야 한다는 엄청난 제도가 있었기에(!),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루트는 동아리였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는 긴장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도 있다(이게 더 컸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인정하고 싶지 않다).
암튼 오늘은 지금 와서 후회되는 것 중에 하나를 적어보려 한다.
점심시간마다 있었던 연습시간에 나는 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다. 사실 무서웠다. 내 소리가 어떻게 들릴까, 내 소리가 너무 구리지는 않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테너의 음역이 아니었는데 테너파트로 중창단에 들어왔기에 높은 음역의 소리를 내야 했고 그게 (너무) 힘들고 자신이 없었다(그렇다고 음색이 베이스도 아니어서 그냥 중창은 일찌감치 손절했어야...).
음이 떨어지면 노래 잘하는 선배들한테 지적을 받곤 했고, 특히 합창을 연습할 때 내가 크게 소리를 내면 앞에 앉은 선배가 뒤를 휙 돌아보며 "너 왜 소리가 그따구니?"라고 말할 것만 같았다(물론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 앞에 앉아있던 선배누나 중 하나는 지금 나와 같이 살고 있다ㅋ).
하지만 그때 소리를 냈어야 했다. 소리를 내야 문제점을 찾고 지적을 받아야 어떤 연습을 해야하는지 알 수 있는데, 지적 받기 싫어서 소리를 내지 않는 선택을 하니 실력이 늘 수가 없었다. 귀한 점심시간을 30분씩이나 매일 바쳤는데 실력도 늘지 않았던 그 시간이 후회스럽다.
그런데 이 교훈은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하게 삶에 적용된다. (많은 대한민국 사람들처럼) 대중 앞에서 비판받을 것이 두려워 나의 주장을 표현하지 않으면 내 주장의 논리가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논리를 날카롭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너무 시간이 많이 든다.
일반화일 수 있으나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나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처럼 한국 기자들 중에 자신있게 먼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 특유의 문화가 아닌가 싶다.
자기의 주장을 펼치지 못하는 문화는 변호사에게 치명적일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책에서 다루고 있듯 그런 문화는 조직을 좀먹고 발전을 저해하는 큰 요인이기도 하다.
여기서 정말 중요한 포인트가 있는데, 개인적으로도 조직으로서도 발전하기 위해서는 그 조직에 '심리적 안전감'이 반드시 필요하다.
(에드먼슨이라는 학자에 따르면) 심리적 안전감은 ‘위험한 것을 시도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자 팀원이 공유하는 믿음’이라 정의되고, 그 효과에 대해 ‘이런 자신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팀원은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 없이 발표하고, 다른 팀원의 발언에 대해 빈정대거나 비웃지 않는다. 심리적 안전감은 상호 신뢰와 상호 존중으로 요약되는 팀 문화의 특징이다. 요컨대 팀원들이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편안하게 행동할 수 있는 팀 문화를 뜻한다.’라고 서술했다.
그게 아무리 어리석어 보일 것 같은 주장이라도 서로에게 펼칠 수 있고, 그 주제를 가지고 난상토론을 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으며, 그러한 생산적인 토론을 통해 결정된 결론에 대해서는 (설령 마음에 들지 않는 결론이더라도) 성심을 다해 수행해나가는 그런 조직.
MISSION에는 그런 조직 문화를 세워가고 싶다. 억지로라도 내 생각을 얘기하고 상대의 생각에 상처받지 않고 반응하는 연습을 나부터 하려한다.
MISSION 변호사 장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