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르는 언제나 코미디

연애보다 설레는 운동 (3)

by m o o n


# 시트콤 인생의 시작




운동 신경이나 체력이라고는 찾아보려 해야 찾아볼 수 없는 나는 누가 우리 엄마 딸 아니랄까 봐 타고난 몸치이다. 등산이 취미이셨던 아빠는 학창 시절 잠시 기계 체조도 하셨을 만큼 타고난 운동 신경과 재능이 있으셨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피를 거의 물려받지 못했다. 그 덕에 학창 시절 내내 체육 시간이 수학 시간만큼이나 싫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체육 시간에는 몸 개그를 선보이기 일쑤였다. 나는 줄곧 진지했고, 최선을 다했으며, 전력 질주를 했지만 체육 선생님과 친구들의 시선에서 나의 장르는 늘 코미디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체육 시간에 다쳐 수업 중간에 선생님과 병원에 가기도 했고, 중학교 땐 그저 체육 시간이 너무나 창피했으며(남녀 공학이라 더욱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고등학교 시절 100미터 달리기를 할 땐 왜 전력 질주를 하지 않느냐며 체육 선생님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었다. 나는 분명 있는 힘껏 전력 질주를 했음에도 말이다. 그런 나의 모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지금까지 한결같이 이어져오고 있다.



분기 별로 있는 핸드폰 대참사. 넘어지지 않고 지나가는 계절이 없다.

일상에서 운동 신경과 순발력이 떨어져 벌어지는 해프닝은 수도 없이 많다. 멀쩡히 길을 가다가도 넘어지는 건 분기 별로 있는 일이라 핸드폰이 남아나질 않는다. 버스가 커브 길을 지날 때 남들은 손잡이만 잡고 있으면 평온하게 지나가는 구간을 혼자 중심을 잡지 못해 앉아있는 사람 무릎 위에 앉는 다든지 심지어 앉다 못해 거의 반을 누웠던 적도 있다. 자전거를 탈 때면 늘 똑바로 가지 못하고 자꾸만 지그재그를 그리며 가다 결국 풀숲으로 엎어지는 일도 흔하다. 나를 오랫동안 봐온 이들은 ‘시트콤 인생’이라는 별명 같은 수식어를 붙여 주었고, 그러다 보니 뜻밖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 같아 몸으로 하는 것에 나는 유독 긴장을 하게 된 것이다.







넘어지면서 약간 깨졌던 시계 유리, 까진 손, 무릎엔 멍까지.

게다가 나는 태생적으로 느린 성향의 인간이다. 말투나 행동, 무언가를 배우는 데 있어서도 남들보다 느린 편이다. 몸으로 하는 것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그나마 지금은 많이 빨라진 편이지만 여전히 남들에 비해 먹는 것도, 걷는 것도, 말하는 것도 느리다. 재미있는 사실은 나는 내가 느리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었다는 것이다. 예전에 가수 이소라가 매주 토요일 밤에 ‘이소라의 프러포즈’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 그 당시 그녀가 오프닝 때 하던 “안녕하세요. 이소라에요.”라는 인사말과 억양을 흉내 내던 게 약간의 유행이었는데, 그때 나는 그게 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웃긴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내 기준에 그녀는 결코 느리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왜 그녀가 느리다고 하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대학 시절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가 미리 영화 티켓을 끊어 놓고 데이트를 하는 데 내가 햄버거 하나를 40분 동안 먹어 혼자 안절부절 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이다. 왜 미리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그는 내가 워낙 느리게 먹다 보니 급히 먹다 체할까 봐 말을 못 했다고 했다.



KakaoTalk_20211229_194015534_03.jpg 신나는 따릉이 타임. 한강으로 가더라도 이 정도로 중심을 잡고 타려면 한 20분은 필요하다.



과거에 비해 많이 빠릿빠릿해진 상태라고 하지만 타고난 성향이 완벽하게 바뀌기란 역시나 쉽지 않은 법. 지금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오고 있지만 남들보다 숙지하는 속도나 성장하는 속도가 확실히 느리다. 방금 시범을 보여주고 설명해 준 동작을 바로 따라 하는 것도 엉뚱하게 따라 하며 몸 개그를 시전하는 건 매번 있는 일. 창피함을 만회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해갔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혹은 반대로 동작을 연습해 잘못된 자극과 근육통만 잔뜩 얻는다거나 하는 식이다. 항상 머릿속으로는 굉장히 멋지게 운동하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냉정하다. 나는 내내 진지한 다큐 장르이지만 가르치는 사람이나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나의 의도와는 달리 코미디나 시트콤으로 장르가 바뀌는 게 창피하고 속상할 때도 있다.


최근 운동을 오랜 시간 지속 해온 사람들, 운동을 통해 삶이 아주 극적으로 변화해 글을 쓰거나 혹은 강의를 하는 등 자신들의 운동 경험을 통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의 이야기는 그리 대단하거나 특별하지 않다. 아직도 몸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이다. 틈만 나면 널뛰는 컨디션에 조금이라도 과하게 운동을 했다 싶으면 바로 좀비 상태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 바로 나라는 사람이다. 철저하고 독하게 식단을 관리해 마치 조각이라도 해 놓은 듯 갈라진 근육에 군살 하나 없는 완벽한 몸매를 만든 것도 아니다. 최애 음식으로 손꼽는 떡볶이와 순댓국, 설탕을 가득 묻힌 갓 튀겨 나온 겉바속촉 꽈배기, 한 입 베어 물면 크림이 와르르 쏟아져 나오는 달콤한 도넛, 앉은 자리에서 한 상자는 우습게 먹어 치우는 몽쉘, 여름이면 아이스크림은 무조건 한 번에 두 개씩, 겨울이면 반드시 먹어야 하는 나만의 보양식 붕어빵,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하얗고 동그란 호빵 등... 이토록 맛있는 음식들 앞에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수도 없이 무너진다. 한 번씩은 다들 찍는다는 보디 프로필 같은 것은 감히 도전해 볼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진출처: 핀터레스트



나 스스로도 몸으로 하는 것에 재능이 없으면 독하기라도 해야 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이 종종 들기도 한다. 그러나 헬스장에 등록하고 피티를 받기 시작하면서 그래도 운동을 이렇게나마 시작했다는 게 어디인가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하는 데 이르렀고, 일주일에 서너 번 헬스장을 다녀 올 때면 ‘계속 하다보면 분명 늘긴 늘겠지? 언제쯤 잘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즈음 내 지갑은 또다른 소비를 대비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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