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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경미 작가 Aug 21. 2020

[3화] 사랑일까...?

아스팔트 끝자락 봉긋 올라온 턱에 서서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차에서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였지만, 행여 들릴까 목소리를 낮췄다. 뒤통수에 그의 시선이 박혔다. 


ㅡ지금이라도 돌아가자고 할까?
ㅡ미쳤어? 오늘이 절호의 기회야. 그냥 눈 한 번 딱 감고 모르는 척 따라가 봐. 이것도 경험이야. 넌 순진한 거냐 멍청한 거냐.
ㅡ이 사람이 싫은 건 아닌데 사랑은 아닌 것 같아. 같이 있으면 편한데 설레지는 않아.
ㅡ아, 뭐가 이렇게 복잡해. 아님 말고! 진짜 사랑하는 사람은 더 조심스러울지도 몰라. 내 말 들어. 이 언니 말 들어라. 내 말 들어서 잘못된 적 있어? 얼른 끊고 내 말대로 해. 알았지?
ㅡ......




잠들지 않은 새벽. 침대 위에서 더듬더듬 휴대폰을 찾았다. 말캉한 이불 위를 더듬는데 후드득 이제 막 내리기 시작한 빗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한 공간 너머 유리창 위로 투둑 투둑 툭 툭 툭 비 닿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꼼짝 않고 나무가 드리워진 유리창을 바라보았다.  
'사랑일까...........?'


불현듯 누군가에게 전화가 하고 싶어 졌다. 작고 네모난 기계를 손으로 만지작거리다 딸각하고 홈 버튼을 누르자 눈이 시어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눈을 감고 다시 화면을 꼈다. 이상했다. 무려 3개월 동안 수화기 저 편 너머 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려본 적 없었다. 그저 내 말을 들어줄 누군가가 한 명쯤 곁에 있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유머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내 이야기에 인내심을 갖고 들어주고, 너무 평범해서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하루에 동정이 아닌 관심을 보여준 사람이었다. 다만 사랑은 아니었다. 이기심에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익산에서 남해까지 3시간 남짓 걸렸다. 음악을 들었고, 그는 휴게소에 들러 짐짓 나를 잘 안다는 듯 묻지 않고 라떼를 주문해주었다. 나는 노랫소리에 집중하지 못했고, 시리도록 푸른 가을 하늘을 보며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를 앞에 두고 전전긍긍하는 여고생처럼 길을 잃었다. 그가 여행 가자고 조심스레 물었을 때 단숨에 거절하지 않았다. 생각해보겠노라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옅은 후회와 부끄러움이 밀려들 즈음 밤이 밀려왔다. 고민의 시간과는 별개로 배가 고팠고, 찾아간 식당에선 마감을 재촉하는 걸레질이 한창이었다. 


ㅡ우야꼬?
ㅡ식사되나요?
ㅡ뭐한다꼬 서있노?
ㅡ예? 예.


살얼음이 살포시 내려앉은 빨간 국물을 한 수저 들이켜자, 꽉 막힌 고속도로가 뻥 뚫리는 시원함이 느껴졌다. 쫄깃한 물회가 주린 창자를 가득 메우자 앞에 있는 잡생각도 사라졌다. 문을 나서자 칠흑 같은 어둠이 우릴 반겼다. 그 흔한 가로등도 보이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해변을 둘이서 걸었다. 어둠 사이로 내 등 뒤에서 허공을 가르는 어색한 손이 보이는 듯했다. 


'여자 많이 만나봤다더니 순 거짓말이고만..' 망설이는 그의 표정이 그려져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ㅡ경미야.... 아까부터 겁나서.. 못 물어봤는데....
ㅡ어?
ㅡ나 믿지?
ㅡ뭐야.

그 타이밍에 '오빠 믿지?'가 떠올라서 피식 웃어버렸다. 


ㅡ나...... 밀어내지만 말아줘.
나는 그런 그의 말이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 그를 빤히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눈물이 났다. 

또르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어진 액체를 슬며시 닦아주는 그를 서글프게 바라보다 나는 그만 그의 이마에 입술을 갖다 대고 말았다. 




>>>>>>>다음 편에 계속.............




[아무튼, 결혼]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해서 어떤 이야기를 엮어볼까 고민하다가 저희 부부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연애소설로 만들어보았습니다. 2년 전에 조금 써둔 원고의 먼지를 털어 세상 밖으로 꺼내놓았고, 올해 완결을 목표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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