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남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다’
자신이 낳았지만, 아들의 마음을 도저히 모르겠다며 하소연합니다. 아들과 대화는 항상 다툼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답답하기도 하고, 또한 아들에게 서운합니다.
‘가족이기에 내가 잘 안다’, ‘그 친구와 10년 넘게 알았기에 잘 안다’
물리적으로 가깝기에, 익숙하기에,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가족보다 같은 꿈을 꾸며 요즘 만나고 있는 분들이 저를 더 잘 안다고 생각됩니다.
‘자신을 안다’는 것이 뭔가요? 나의 정체는? 어느 학교를 나왔고, 몸무게가 몇이고, 무슨 반찬을 좋아하고, 잠버릇이 어떻고, 오래전 학교 다닐 때 이런저런 행동을 했었지, 등등 이런 것도 나를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고, 어떤 가치관으로 판단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이런 게 나에 대한 더 정확한 정보 아닐까요?
우리는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합니다. 실제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다행입니다. 모르기에 이것저것을 해보며 한 평생을 보냅니다. 시도하고 실패하며 성장하는 겁니다. 자기다움? 이건 영원히 찾아야 하는 겁니다. 만약 자기를 찾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가짜입니다. 오늘 찾아도 내일 또 찾아야 합니다. 그게 자기다움입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익숙한 관계일수록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그녀)를 잘 모릅니다. 가장 가깝고 익숙한 관계인 자기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자신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은 어두운 베일에 싸여 있는 존재다. 토끼의 껍질이 일곱이라면, 인간은 일흔 번 곱하기 일곱 번이나 껍질을 벗겨야 하며, 그래도 ‘그게 정말 너야, 더 이상 껍질이 아니야’라고 할 수 없다” 니체의 말입니다. 결국 인간은 아무리 헤집고 파헤치더라도 자신에 이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는 그 어떤 확신도 보류해야 합니다. 그리고 경험이라는 바다 속에 맨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에 대해서도 최대한 판단을 늦춰야 합니다. 이런 시도를 지속해야 비로소 슬프면 슬픈 대로, 기쁘면 기쁜 대로,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때 하는 긍정이 진짜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는 이제 우리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알기 위해서도 물리적 거리두기 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좀 어려운 손님처럼 관찰해야 하고,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에 대해서도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을 만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야 합니다. 괜찮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글쓰기입니다.
글을 한번 써보세요. 그리고 한동안 보지 않다가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쓴 글을 보는 겁니다. 아마 자신이 좀 더 객관적으로 보일 겁니다. 글쓰기는 자신과 거리두기의 아주 괜찮은 방법입니다.
서운한 감정이 생길 때 아파하세요.
그리고 그 감정을 흘려버리지 마시고 한 줄 쓰세요. 자신을 위로하며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관계를 푸는 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