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
어머니께
......(중략).......
지난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모든 것이 마치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지요. 과거는 그런 식으로만 붙잡을 수 있는가 봅니다.
저는 계속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가장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요즘 제 그림은 조금씩 더 조화를 이루어갑니다. ......(중략)........ 작년에 어디에선가 글 쓰는 일과 그림 그리는 일을 아이를 낳는 일과 같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물론 아이를 낳는 일이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더 자연스럽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저는 다른 무엇보다 제 일에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비록 그림 그리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받지 못하는 일 중 하나이지만, 저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거든요.
- 1890년 6월 12일 고흐가 어머니께 보낸 편지
고흐가 권총으로 생을 마감하기 한 달 반 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다. 그는 앞으로도 고독하게 살아갈 것이라는 불효의 말을 했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그 편지를 읽고 있으면, 그때까지는 여전히 삶에 대한 의지가 남아 있었음을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그의 죽음은 어느 한순간의 충동적 욕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