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꽃, 눈, 달은 본래 한가한 풍경이다.

by 정강민

세월은 본래 넉넉하게 흐르건만 바쁘게 사는 사람은 스스로 그 시간을 좁히고, 하늘과 땅은 본래 넓고도 크건만 속 좁은 이는 스스로 그 공간을 막는다. 바람, 꽃, 눈, 달은 본래 한가한 풍경이건만 분주한 사람은 스스로 복잡하게 만든다.

-채근담


바쁨이 어느새 성공의 다른 이름이 된 시대다. 바쁘다는 말 속에는 ‘나는 필요한 사람’이라는 은근한 우월감이 숨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바쁨 속에 밀어 넣으며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 분주함의 한복판에서만 비로소 느림의 귀함이 드러난다. 쉴 새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잠시 멈추어 설 때, 우리는 날숨처럼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본다. 바쁨과 고요는 서로의 그림자다. 바쁨을 피하려 애쓰기보다, 그 속에서 고요를 발견하고, 고요를 통해 다시 바쁨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삶은 한층 더 깊어지고 넉넉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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