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녀야 한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니체
혼돈을 지니지 않은 채로는 평온의 의미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런 반문은 가능하다. 그 혼돈이 나를 집어삼킬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되지 않겠느냐고. 이에 다시 반론이 따른다. 자신을 삼키지 못하는 혼돈은 애초에 혼돈이라 부를 수 없지 않느냐고.
하나의 사건을 어떤 이는 사소한 에피소드로 넘기지만, 또 어떤 이는 자신을 통째로 뒤흔드는 혼돈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는 흔히 전자를 더 단단한 사람이라 부른다. 그것도 옳다. 그러나 예술과 창업처럼, 세계에 흔적을 남기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 즉 ‘춤추는 별’을 잉태하는 이는 대개 후자다. 그들은 고통을 피하지 않는다. 고통을 견디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재료로 바꾸기 때문이다.
광부들이 카나리아를 동굴에 데리고 들어갔던 이유도 같다. 인간보다 훨씬 예민한 카나리아는 공기가 탁해지는 순간 먼저 파닥파닥 날뛰며 위험을 알린다. 같은 환경 속에서도 누군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누군가는 생존을 위협받는 혼돈을 감지한다. 인식의 민감도는 이렇게 다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단정할 수 없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상황과 감각 속에서 판단할 뿐이다.
그래서 세상은 어쩌면 공평하다. 같은 고통이 어떤 이에게는 아무 일도 아닌 기억으로 남고, 어떤 이에게는 별을 잉태하게 하는 씨앗이 된다. 작은 에피소드로만 세계를 통과하는 자는 끝내 별을 만들 수 없다. 별은 언제나, 내면의 혼돈을 끝까지 통과한 자의 몫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