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 갇힌 것처럼....

철학하는 부적응자

by 정강민

“가치관이 뚜렷한 사람, 자기 철학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습니다.”

20살에 어떤 모임에서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다. 뭔가 자기 생각이 있는 선배나 동료들이 멋지게 보였다.

“정강민 선배는 뭔가를 이야기하는데 핵심이 없어,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야!”

어떤 후배가 술자리에서 우스게 소리로 했던 말이다.


수업시간 때는 교수님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말을 시키나 질문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고 질문을 받으면 뭔가라도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스스로에게 ‘강민아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말을 끝내고 스스로 한심했던 적이 많다.

회사 워크샾에서 5분 정도 말할 기회가 생겼다. 며칠을 준비했다. 준비했다는 표현보다는 고민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리고 100명 정도 되는 직원들 앞에서 이야기 했다. ‘아~ 정강민 떨고 있구나! 마무리가 별로구나!’


살아오면서 늘 긴장했다. 말도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 앞에서도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예들 들어 우주든, 정치든, 철학이든, 세상흐름이든, 무엇이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다. 그런 자리가 없는 게 답답할 뿐이다.

20살에 꿈꾸었던 ‘자기 철학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지적성장의 결과물이다. 읽고 사유하고 쓴 결과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배우고 생산하는 삶을 실천한 결과다. 스스로 지적유희라고도 한다. 정신적 일류의 삶이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돈을 10억 주면 바꿀까? 아니다. 100억 주면 바꿀까? 잠깐 생각해보자. 아니다. 바꿀 수 없다.


이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렇게 이야기하니, 남들이 보기에 늘 행복한 것처럼 보여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하고는 살짝 다르다. 통쾌하고 시원한 기분이 늘 행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불행에 대처하는 자세가 예전과는 다르다. 행복과 불행은 늘 교차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다. 불행이 오면 예전처럼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바로 옆에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 행복한 상태가 왔을 때 불행이 옆에 있다는 것을 알기에 기고만장하지 말라는 것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세상은 음양이 교차하면서 펼쳐진다는 것을 안 것이다. 이런 결을 살짝 느낀 정도다.


결국 지금은 불행을 견디는 힘이 있다. 힘이 아니라 스킬이라 해야겠다. 이런 스킬이 없을 당시 불행과 맞닥뜨릴 때는, 그냥 아무 철학이 없었기에 그냥 생짜로 버텨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참 대단했다.

합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 혹은 종교적 회심자(回心者)를 균형을 잃은 사람, 심지어 머리가 돈 사람으로 생각한다. ~~~~~ 종교적 회심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의 눈에는 회심 같은 것이 현재의 삶을 거룩하게 포장하는 일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직접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총체적 변화를 의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어둠속에 갇힌 것’처럼 보이게 된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윌리엄 제임스(1902)


‘그런 경험을 한 사람에게는 오히려 보통 사람들이 어둠속에 갇힌 것처럼 보이게 된다.’ 뭔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을 보면 어둠속에서 갇혀 지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물론 깨달음은 주관적이다. 이것을 상대에게 증명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 뭔가 얻은 사람은 통쾌하고 시원한 느낌을 가진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이것이 없을 때를 상상하는 것은 눈을 감고 사는 느낌처럼 답답하다.

뭔가를 얻은 경험(깨달음)이 없거나 있었는데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분들을 보면, 어둠 속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내가 불행에 생짜로 이겨낸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윌리엄 제임스가 말한 ‘어둠속에 갇힌 것처럼’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 닿았다.


.......................

위의 글을 쓰고 나니 엄청 잘난 척으로 보여 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총명하지 못했던 한 인간이 살짝 총명해진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해해 달라. 프리라이팅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책을 한번 써볼까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