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혼자 갔습니다. 입원 등록을 합니다. 헐렁한 환자복으로 갈아입자마자 전 완전한 환자가 되었습니다. 10분 전까지 겉으로는 건강한 사람이었는데.........., 피도 뽑고, 혈압도 재고 수술 전 여러 검사를 했습니다.
다음날 아내가 왔습니다. 의사는 수술동의서를 설명하면서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10만분의 1이라고 알려줍니다. ‘1이 내가 될 수도 있겠구나.’
아내가 서명합니다.
수술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립니다. 잠시 후 수술침대에 옮겨 탑니다. 수술침대에 누워 복도를 지나갑니다. 천장의 형광등이 보이고, 주변 사람들이 저를 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장면입니다.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도 있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아내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수술실 문이 열리고 가족들은 들어올 수 없다고 간호사가 말합니다. 수술실 안에는 수술을 기다리는 사람이 몇 명 있었습니다. 누워서 고개를 살짝 돌려 주변을 봅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됩니다. 여자 의사분이 다가옵니다.
“잠시 뒤 마취를 할 겁니다. 환자분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환자분이 수술하는 곳이 왼쪽 무릎인지 오른쪽 무릎인지를 정확하게 이야기 해주세요?”
“제 이름은 정강민입니다. 수술할 곳은 왼쪽 무릎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선생님에게 말하는 것처럼 이름과 수술부위를 정확하게 말합니다. 마음속으로 ‘오른쪽 무릎이라고 잘못 이야기하면 아프지 않는 무릎을 수술할 수도 있겠구나!’ 이런 불안한 생각이 스쳐지나갑니다.
잠시 뒤 마취가 온 몸에 퍼지는 것을 느낍니다.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마지막 기억을 붙잡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아 수술하는 구나. 정신이 희미해지고 있구나!’
깨어나니 회복실이었습니다. 제 왼쪽다리는 붕대로 단단히 묶여 있었습니다. 붕대에는 피도 묻어있습니다. 너무 아팠습니다. 조금 지나니 간호사가 왔고 ‘3시간 정도 지나면 병실로 갈 거니, 좀 더 누워 계세요.’
회복실을 나와 아내를 만났습니다. 수술 후 병실에서 보내는 첫날밤 너무 아팠습니다.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화장실을 혼자 가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 아프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 순간에는 다리가 끊어지는 고통이었습니다. ‘무릎수술도 이런데, 다른 큰 수술은 얼마나 아플까?’ 아플 때는 오로지 저의 아픔만 있었습니다.
수술 후 처음 1년간 걷기만 했습니다. 예전엔 길을 건널 때 횡당보도에 다다르기 전 몇 미터 앞에서 초록불이 켜지면 빠르게 뛰어 건넜습니다. 수술 후에는 그러지 못했고, 꼭 신호등에서 기다렸다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가까스로 건넜습니다. 걷는 모습은 정상이었지만, 빠른 스피드를 낼 수 없는 노인이었습니다. 동네 낮은 산의 등산도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몇 년 전 무릎수술을 했던 이야기입니다.
수술 후 3년 정도 지니면서 계단은 2단씩도 오를 수 있었습니다. 강하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당시 친구들을 만나면 주로 하는 대화가 세 가지 정도였습니다. 조직생활의 고단함, 자녀들 학원 이야기, 자신이 겪고 있는 몸 아픔 이야기입니다. 그 중에 자신이 아팠던 경험과 치료이야기를 아주 소상히 했습니다. 치과치료이야기, 수술이야기, 내시경이야기......., 술자리에서 주로 이런 이야기로 3~4시간을 때웁니다. 저도 무릎수술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몇 번 했습니다. 자랑은 아니었지만, 경험했기에 무용담처럼 말했습니다. 보통 아픈 이야기를 하는 것은 위로받고 싶다거나 잘 견뎌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아픔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견뎌내고 있다는 증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