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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Jun 03. 2020

바보처럼 행복하게

- 손에 움켜쥔 뜨거운 돌을 놓아버리기

지난 한 15년 정도를 바보처럼 살지 않으려고 버둥거렸습니다. 일부러 센 척도 해봤고 똑똑하게 보이려 모르는 것도 아는 것처럼 꾸몄던 적도 있었던 것 같네요. 그렇게 해야 이 도시에서 버틸 수 있다고 믿었고 종국에는 자유로운 삶을 얻을 거라고 믿었지요.  


그렇게 살았지만 제가 원했던 자유로운 삶이 펼쳐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매일이 스트레스였습니다. 몸이 망가졌고 살이 쪘습니다. 혈압이 오르고 늘 피곤했고요. 마음도 허물어졌습니다. 남 탓, 자기 비하, 막연한 선망, 불안, 초조... 다스려보려 명상, 복식호흡 등을 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에서 부풀어 오른 화는 제 주변의 가장 약한 대상에게로 쏟아졌습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벌컥 화를 내고는 후회하는 일이 잦아졌고요. 저와 함께 일하던 동료들에게도 사소한 일에 짜증을 부리곤 했지요.  


그 무렵 회사를 떠났습니다. 여러 이유가 복합적이었지만 제가 더 망가지지 않기 위해 떠나야 했습니다. 아무런 계획이 없었지만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퇴사하고  나서 좋은 인연 덕에 유럽을 한 달 열흘 정도 떠돌았습니다. 유럽 곳곳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며 느낀 건 제가 바보 같다는 자각이었습니다. 아주 좁디좁은 제 일의 영역을 벗어나면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었던 겁니다. 모두 새로 배워야 할 만큼요.  


그러자 스스로를 낮춰야 편안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더 잘하는 것을, 더 훌륭하다는 것을, 더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굳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바보처럼 살아야 행복하다는 것도 아주 조금 눈치챘습니다. 누군가의 관심과 칭찬을 위해 노래하기보다 함께 즐기기 위해 노래하고 싶어 졌습니다. 화내야 할 때 웃고 싶어 졌고, 힘들지만 조금 더 남을 이해하고 싶어 졌습니다. 다른 이를 평가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고 싶어 졌습니다. 질책보다 칭찬이 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바뀌자 그토록 나를 괴롭히던 아토피가 가라앉았습니다. 피곤이 사라졌습니다. 뭔가 세상에 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듯합니다. 


물론 아직 멀었습니다. 때때로 화가 치솟기도 하고 난데없이 자기 비하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물론 예전과는 달라졌지요. 가라앉힐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밖에서 구하던 인정과 사랑을 제 안에서 구할 수 있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제 스스로를 아껴주게 된 거죠. 


젊을 땐 주연 배우의 삶을 꿈꿨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조연으로서의 삶도 꽤 괜찮구나, 받아들였습니다. 

마음 한 구석에 언젠가 이루어질 지도 모를 주연 배우의 꿈을 꾸면서요.


더 나이가 들면 우주 속에서 제 자신이 먼지 같은 존재임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겠지요. 

그 무렵 하늘이 부르실 겁니다. 


바보처럼, 행복하게 열심히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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