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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Mar 30. 2021

웃음을 통제하려는 사람들

- 녹음의 시대를 살아가며

남의 말에 유난히 웃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꽤 재치 있는 유머에도 근엄한 표정으로 일관합니다. 조금이라도 웃으면 자신의 권위와 카리스마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예전에 기업 교육을 하는 강사분께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육 당일의 분위기는 기업의 임원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임원들이 강사의 유머에 반응해주고 맞장구쳐주는 회사는 에너지로 가득하다고 합니다. 반면에 엄숙, 근엄, 진지한 임원들의 반응이 있는 회사는 회사 전체의 분위기가 축 처져 있다네요. 당일 교육도 벽에 대고 하는 느낌이랍니다. 


자신이 잘 웃지 않는 것은 좋은데 거기서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이 웃는 것까지 억압하거나 면박을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버한다는 것이지요. 


"그게 그렇게 웃겨? 괜히 오버하지 마."

"뭐 잘 보일 일 있어? 되게 좋아하네?"


저는 좀 잘 웃는 편이라 이런 말들을 꽤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무척 힘들었는데, 나이 들면서는 이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조금 더 오버해 버릴 정도로 익숙해지긴 했습니다. 주로 약간 꼰대스러운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행태인데요, 제가 관찰해본 바로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이외의 사람들이 대화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그들이 싫은 것은 웃음이 아니라, 그 웃음을 유발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사람들의 관심인 것이지요. 그들에게 그 관심은 오로지 자신에게 향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남들 웃는 것에 면박을 주다가도 자신이 던진 말도 안 되게 썰렁한 유머에는 웃어주기를 바라는 겁니다. 창의성 파괴자들이자, 분위기 파괴자들입니다. 


사실 우리는 꼭 웃겨야만 웃는 것은 아닙니다. 서먹한 분위기를 풀어보려 웃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기 위해 웃기도 합니다. 상대에게 적의가 없다는 의미로 웃기도 하고요. 조롱이나 비웃음을 빼고는 그 어떤 웃음도 좋은 것입니다.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거든요. 웃음 앞에는 위아래가 없지요. 더 중요한 사람, 덜 중요한 사람도 나누어지지 않고요. 그래서 동네 깡패나 독재자들은 웃음을 싫어했습니다. 통제하려고 했지요. 


"뭘 실실 쪼개?"


동네 깡패나 양아치들, 혹은 그와 유사한 부류의 사람들이 주로 쓰는 멘트입니다. 


"이빨 보이지 마라. 여기 놀러 왔냐?"


군대의 조교도 비슷했지요. 


그러나 웃음을 통제하려는 올드 패션 꼰대들은 조금 반성해야 할 듯합니다. 저와 같은 동세대 사람들은 그런 이들의 행태를 작은 불편함이라고 간주하고 그냥 그들 앞에서 대화를 줄이고 입을 닫거나 아예 만남 자체를 멀리할 뿐이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참지 않는 듯합니다. 직장에서의 일상적인 대화를 각양각색의 도구를 통해 녹음하는 친구들이 많아진다고 하네요. 어떠한 불이익이나 불공정함도 참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사원증 형태로 된 녹음기부터 펜형, 시계형 녹음기까지 녹음 장치는 더욱 소형화되고 간편해져서 손쉽게 대화를 녹음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꼭 녹음되어서가 아니더라도 평소 스스로가 타인의 웃음을 얼마나 억압했는지 자신의 화법을 되돌아볼 일입니다. 저도 혹시 그런 적은 없는지 반성해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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