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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30. 2021

'논다'는 것의 위대함

- 심지어우리 집강아지도 노는 것을 좋아한다

제가 참 예뻐하는 강아지가 있습니다. 이름이 이삭입니다.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제가 내 건 조건이 두 가지 있었지요. 하나는 '물건 사듯이 가게에서 사면 안된다. 정성스레 키우던 집에서 태어난 강아지여야 한다'였고요, 나머지 하나는 '아빠는 강아지 뒤치다꺼리를 하지 않는다'였습니다. 예상했겠지만 전자는 지켜졌고, 후자는 무너졌지요. 어쨌든 그런 조건 때문에 몇 년 전에 아내가 부산에까지 내려가서 데려온 아이입니다. 정 붙이면 십 수년 뒤에 너무 힘들 것 같아 어떻게든 데면데면 지내려 했는데, 이 녀석 하는 짓이 너무나 귀엽고 맑고 순진해서 흠뻑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이삭이가 하루 종일 지내는 것을 지켜보면 정말 피식, 웃음이 터져 나옵니다. 엄마가 조금만 움직여도 혹시 먹을 것을 주지 않을까 쫄쫄 따라옵니다. 아빠가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면 또 혹시 먹을 것을 주지 않을까 기웃거리고요.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지요. '이삭이는 하루 종일 먹을 것만 생각해요.' 아내가 그렇게 말하며 웃습니다. 제가 봐도 그래 보입니다. 이삭이는 하루 종일 잠자고 응가할 때 말고는 늘 먹는 것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머릿속의 90퍼센트가 그 세 가지에 관한 것인 듯해요. 


그런 이삭이가 하는 나머지 10퍼센트가 놀이입니다. 집안 곳곳에 던져 놓은 인형들을 물고 와서 빼앗아보라고 달아나곤 합니다. 종이 상자를 하나 던져주면 그것을 이리저리 찢으며 놀기도 하고요. 그걸 물끄러미 보다 보니 '논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다가옵니다. 우리 주변의 꽤 많은 문화 콘텐츠가 바로 그 '논다'는 것을 통해 발전해왔겠지요. 잘 노는 사람들에 의해 인류가 행복을 얻게 되었던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어른들이 아이들이 노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지요. 공부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것 말고는 모두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틈에 노는 법을 잊어버렸지요. 어른들의 놀이가 뻔한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노는 것에 익숙지 않아서일 겁니다. 


그런 와중에 세상이 변했습니다. 놀 줄 아는 사람들의 세상이 온 것입니다. 엄숙하고 근엄한 표정으로 진지하게 매사에 임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지요. 예전에는 교장 선생님이 훈화 말씀을 하실 때 웃으면 이빨 보인다고 야단맞았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게 믿기 어려워진 시기가 온 것이지요. 새삼스럽지 않은 것은 그런 놀이가 우리 문화의 상당 부분을 이뤄왔기 때문입니다. 잠시, 일정 기간 동안 우리가 너무 엄근진으로 살았던 것뿐일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위한 지식을 습득하게 하는 것도 좋지만 놀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퍼뜩 들어 돌아보니,... 잘 놀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노는 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지요. 그저 자기들 하는 대로 놀게 해 주면 될 뿐이겠지요. 그런데 놀고 있는 아이를 보니 행복해 보입니다. 


놀이는 문화를 만들고 사람을 행복하게 합니다. 

노는 것의 위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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