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호 May 31. 2021

고쳐 쓰는시절이 다시 올까?

- 리페어와 인플레이션

예전에 제 아버지는 제 방을 둘러보고는 까마귀 둥지 같다고 하셨습니다. 깨끗하게 잘 청소되어 있고 물건들도 잘 정돈되어 있는데, 이것저것 잡다한 것이 많아서였습니다. 까마귀들이 반짝이는 것을 이것저것 주워 자기 둥지로 옮기듯 제 방에도 마치 고속도로 휴게소의 잡화점처럼 이런저런 물건들이 넘쳐났지요. 이유는 제가 뭘 잘 못 버려서입니다. 


저는 물건을 잘 못 버립니다. 아직 잘 사용할 수 있는 물건들, 이를 테면 값싼 볼펜이라든가 스마트폰에 밀린 전자책 단말기, 구형 버전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등을 저는 잘 못 버립니다. 다행히 저는 물건을 많이 사들이는 취미는 없어서 물건의 홍수 속에 떠다니지는 않아도 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방치된 물건들이 자꾸 제 책상 주위로 모인다는 게 문제지요. 


아마도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매우 훌륭한 제품들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팔릴 수 있게 된 것이 말이지요.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경제 지식으로는 한동안 물가가 안정된 상태의 경제 성장이 가능했던 이유가 중국산 공산품 덕이었다고 하더군요. 끊임없이 싸고 좋은 물건이 중국에서 생산되어 미국으로 흘러든 결과 물가 상승 없는 경제 성장, 즉 골디락스가 가능했다고요. 


그 덕에 소비가 미덕인 사회가 됐습니다. 꽤 오래된, 좀 낡은 물건을 쓰고 있으면 '어지간하면 하나 사라, 그거 요새 얼마 한다고 그러냐?' 하는 핀잔을 듣게 되기 십상입니다. 낡은 물건을 쓰는 낡은 사람이 된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앞으로는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저가 물건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것이 좀 힘들어질 듯하고요.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많아졌잖아요. 풍요를 위해 희생했던 환경을 돌보아야 하고, 대량 생산을 위해 강제됐던 가혹한 노동도 완화시켜야 하니까요. 그게 가능하려면 초저가 경쟁이 아니라 정당한 과정을 밟아 제대로 만든 물건을 제 값 주고 팔아야겠지요. 세상이 이제 조금씩 그런 방향으로 움직여 갈 것 같습니다. 


앞으로 물건을 살 때 조금 더 정성껏 요모조모를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물건을 제 값 주고 사야겠지요. 그리고 그렇게 제 옆에 두게 된 물건은 고장 나면 내다 버리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수선해가며 사용해가야 하겠습니다. 한 명 한 명이 그렇게 하다 보면 엄청난 공급 과잉도 조금은 진정되겠지요. 앞으로의 세상은 왠지 그렇게 바뀌어 가지 않을까요?



작가의 이전글 작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