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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04. 2022

하나의 시절이 지나가는 느낌

- 앞으로는 또 어떤 시절들이 펼쳐질까

우리에게는 무언가가 전부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살아보니 그렇더군요. 엄마가 전부였던 시절, 노는 게 전부였던 시절, 공부가 전부였던 시절, 우정이 전부였던 시절, 사랑이 전부였던 시절, 성공이 전부였던 시절, 가족이 전부였던 시절, 건강이 전부였던 시절...


사실, 무언가에 인생의 전부를 걸면 안 되지요. 삶이 불균형해지고 몸과 마음에 탈이 나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우리들은 항상 무언가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삶이란 것이, 인생이란 것이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우리가 전력투구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소중한 것들을 내어 놓지 않으니까요. 


삶 전체를 한 가지에 몰아넣고 살아가는 몇몇 특출난 사람들을 빼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삶의 어느 시기부터인지 모르게 조금씩 조금씩 삶의 방식이 바뀝니다. 가만히 있어도 피가 끓는 나이가 지나면 이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한 가지에 거는 삶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온 모든 것을 한 가지씩 챙겨나가는 삶을 살아가게 되지요. 


신기한 건 삶의 어떤 시점마다 무슨 표시를 해놓거나 담장을 쌓아놓은 것도 아닌데, 문득 뒤돌아보면 인생의 어느 시절에 나의 전부를 걸었던 그 무언가가 다르게 느껴집니다. 덧없다거나 하찮다거나 하는 감정이 아니에요. 신기한 감정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운동장을 보는 기분이랄까요. 어렸을 때는 그토록 커다랗게 느껴지던 것이 나이 들어서 보면 정말 자그마하잖아요. 어렸을 때 정말 소중했던 유리구슬이나 딱지들이 담긴 상자를 철이 들고 나서 보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들면 저는 한 시절이 지나갔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지요. 


미리 살아볼 수 없는 인생이라 언제나 기대됩니다. 앞으로 제게는 또 어떤 시절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젊은 청춘의 시절처럼, 제 모든 것을 걸진 않으렵니다. 하지만 또 모르지요. 삶의 신비가 어디로 인도할지요. 


그런 날이 있잖아요. 철없었던 십 대의 나에게, 불안정했던 이십 대의 나에게, 부푼 꿈을 품었던 삼십 대의 나에게, 견디고 견뎠던 사십 대의 나에게, 그 모두에게 각각 저마다의 시절을 잘 살아주었다 하고 싶은 날이 있지요. 어깨를 툭툭 치며 수고했다고 인사를 건네고 싶은 날 말입니다. 


오늘이 그런 날이네요. 그냥, 문득, 한 시절이 지나갔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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