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능력!
젊었을 때는 꽤 예민한 성격이었습니다. 지금 제 주변의 사람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것입니다. 누가 봐도 성격 좋아 보일 만큼 퉁퉁하게 불어난 턱밑 살과 뱃살 덕분이지요. 하지만 스무 살에서 서른 살 무렵에는 지금보다 거의 20킬로그램 이상 가벼운 바싹 마른 체형이었답니다. 그 시절에는 무척 민감하고 쉽게 상처받으며 자주 긴장하고 사소한 일에 걱정이 많았지요. 스무 살, 서른 살 시절의 '나'를 떠올리면 때때로 안쓰럽고 때때로 혐오스럽습니다.
지금은 많이 닳고 닳았지만, 여전히 사람 사이의 관계에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기 때문에 회식이나 술자리를 힘들어 합니다. 또 간단한 안부전화 한 통이 힘들어서 무정하다, 무심하다는 핀잔과 원망을 달고 살고요. 꽤 많은 인연이 그런 제 성격을 못 견뎌서 하나 둘 떠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동안 일을 할 때에 그런 예민함은 종종 성마른 태도로 나타났습니다. 늘 안달했고 조바심쳤지요. 어떻게든 결론을 내야 했고요. 젊은 시절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밖으로 티를 덜 내게 됐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제가 '둔감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받아들이게 된 것은 세상의 풍파에 이리저리 치이며 모난 구석들이 둥글둥글 깎여나간 탓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결론을 짓지 않고 일정 기간 동안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는 능력도 천재의 특성이자 대단한 능력 중 하나라고 하더군."
선배님이자 상사이신 분께 이 말을 들었을 때, 꽤 신선했습니다. 단박에 납득이 됐거든요. 우리가 인간인 이상, 어찌 손대는 족족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겠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구르는 대로 부딪치는 대로 밀리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하나 둘 저절로 해결되기도 하고 누군가가 대신 풀어주기도 하고 대단한 문제인 것처럼 보였던 일이 별 것 아닌 사소한 일이 되고 그러는 것이지요. 반백년의 삶을 살아보니 정말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게 풀려나갔던 것 같았지요. 그걸 환기시켜 주는 말이었습니다. 해골바가지 속의 물을 마신 원효의 심정이랄까요!!
일본의 와타나베 준이치라는 작가는 일전에 <<둔감력>>이라는 책도 냈더군요.
"단언하건대, 결코 예민하거나 날카로운 것만이 재능은 아니다. 그보다는 사소한 일에 흔들리지 않는 둔감함이야말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재능이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젊은 날,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이 문학청년의 자격이자 천재의 징후라고 어리석게도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그와 정반대의 성격, 의도적으로 무감하고 무신경하고 무던할 수 있는 성격이 진정 큰 그릇임을 알게 됐습니다.
아는 것, 깨닫는 것과 그것을 실천하며 사는 것은 물론 다릅니다. 여전히 간혹 마음속의 속 좁은 어린아이 때문에 마음 상하고 상처받습니다.
허나 요즘은 그럴 때 둔감력을 연습합니다.
하루하루, 조금은 둔감하게, 그냥 내버려 두며,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