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아버지가 감정 표현이 없었던 진짜 이유

by 강호

"당신이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있으면 무서워요."


언젠가 아내가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무표정한 얼굴에서는 감정이 드러나지 않으니 숨이 막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딱히 화가 나지도 않았습니다. 근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한데 왜 그리 표정이 딱딱했을까요?


요즘 저는 출퇴근을 지하철로 합니다. 지하철 속에서 만나는 세상 아버지의 표정들도 한결같았습니다. 웃음기만 없는 것이 아니라 슬픔과 기쁨, 분노, 애잔함 등등이 드러나지 않는 아주 드라이한 표정이었습니다. 뭔가 단단한 감정의 껍질이 씌워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지금은 작고하신 제 아버지도 비슷했습니다. 집에 계실 때 대부분의 시간에는 딱딱하고 엄격한 표정이었으니까요.


그 딱딱한 감정의 껍질은 어디서 연유한 것일까. 그런데 신문을 보다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게 된 것 같습니다. 'Keep calm, carry on.' 호들갑 떨지 말고 하던 일 계속 하자는 뜻이라는데, 영국 사람들이 최고로 치는 미덕이라고 합니다. 희로애락을 안으로 감추고 밖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것, 그게 최고의 미덕이라는 것이지요. 특히 영국 사람들은 국가 지도자들에게 이 덕목을 강하게 요구한다고 합니다. 국가 지도자라면 모름지기 바위처럼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천둥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지는 바다 한가운데서 파도가 솟구쳐도 국가라는 함선을 안전하게 끌고 가는 선장은 감정적인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내용을 보며 우리 아버지들이 스스로를 생각할 때도 비슷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요동을 쳐도 가족이라는 배를 끌고 가는 선장은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뼛속까지 자각했던 건 아닐까. 우리의 아버지들은 스스로를 감정의 딱딱한 껍질 속에 밀어 넣어야만 간신히 가족을 위한 부동심의 경지에 오르게 되는 건 아니었을까 싶었습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무릎이 퍽퍽 꺾여지는 삶의 고달픔을 만나게 될 때,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른 안타까움과 탄식을 삼켜야 할 때, 어느 날 문득 젊음이 사라지고 황혼의 그림자가 자신의 삶에 드리웠다는 허망함을 마주했을 때, 그 감정의 껍질 한 장이 유일한 피난처였을지 모르지요.


세상이 주는 굴욕과 좌절, 실패, 괴로움, 미안함 등을 표현 없이 삼키려면 그렇게 딱딱한 외피가 필요했을 겁니다. 간혹 그렇게 숨어 살던 감정이 어느 봄날 벚꽃 흐드러지게 핀 풍경 앞에서나, 캄캄한 극장의 한 귀퉁이에서 거나, 혼자 떠난 출장지의 가을 바다 앞에서, 문득 터져 나와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을 법합니다.


그리 생각하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새삼 그립습니다.


유행가 가락을 빌려 여쭤보고 싶네요.


'아버지, 어찌 그리 사셨어요?'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게 됩니다.


'저도 그리 살게 되네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 힘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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