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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서사'와 '빌런의 서사'

-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by 강호

둘째 아이와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몰랐던 아이의 고민을 꽤 시간이 지나서 듣게 되었거든요.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아이가 중학교 때 그토록 말이 없고 표정이 어두웠던 것이 단지 사춘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때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아이가 그렇게 힘든 시절을 보내진 않았을 텐데 하는 미안함이 컸습니다.


물론 영화나 웹툰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정말 감기 같은 시기였다고 여길 수도 있는 정도의 ‘힘듦’이었습니다. 둘째 아이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자세한 이야기는 언급할 수 없고요, 어쨌든 아이가 고백했던 건 ‘이러저러한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조금은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아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가급적이면 그 하소연을 들어주고자 했습니다. 아이에게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묘하게도 ‘영웅의 서사’와 ‘빌런의 서사’를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숱한 영화나 만화, 드라마 등등에서 ‘영웅의 서사’를 접합니다. 부모님을 볼드모트의 손에 잃고 이모네 집 계단 밑 방에서 온갖 설움을 받으며 자란 해리포터가 있고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서출 홍길동도 꼽을 수 있겠네요. 제가 해리포터만큼이나 좋아하는 만화 <<나루토>>의 주인공인 나루토 역시 몸 안에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 괴물 구미호를 품고 살게 되어 마을 사람들에게 온갖 따돌림과 미움을 받지요. 어린 나이에 부모가 살해되는 사건을 겪은 부르스 웨인도 있습니다. 그도 배트맨이라는 히어로가 되어 고담시를 지킵니다.


저는 이런 영웅담이 심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가 읽고 보고 느낀 영웅담으로 인해 우리는 살면서 마주하는 다양한 어려움이나 장애물 등을 ‘영웅의 서사’에 담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물론 어떠한 말로도 형용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사건이나 처참한 현실까지 ‘영웅의 서사’에 담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경험이 없기에 그런 사건을 겪은 분들의 마음을 헤아릴 길이 없어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요.) 빅터 프랭클 박사는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인상 깊은 가르침을 전해주었는데요, 외부의 자극과 우리의 반응 사이에는 어떤 공간이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우리만의 힘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동일한 자극에 대해서도 다른 반응을 하게 된다는 거죠. 왠지 저는 영웅담을 읽으면 그 공간에 영웅과 비슷한 반응을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채워지는 것 아닐까 싶어요.


사실 거의 비슷한 곤경에 처해도 영웅의 서사에서는 그것이 주인공을 강하게 만드는 시련이 되는 반면, 빌런의 서사에서는 세상에 대해 적의를 품게 되는 계기가 되곤 하잖아요?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살면서 경제적으로 궁핍을 겪던 조커가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했고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그는 빌런이 됩니다. 나치 수용소에서의 트라우마로 인해 X맨 시리즈의 매그니토는 빌런이 되지요. 영웅이 되느냐 빌런이 되느냐는 빅터 프랭클 박사의 그 공간에 우리가 영웅의 서사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을 갖춰놓았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물론 평범한 우리는 영웅이 되는 경우도 드물고 빌런이 되는 경우도 드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살면서 겪는 크고 작은 역경들을 영웅의 서사에 담아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럴 때 삶을 더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살아 내게 되지 않을까요. 자칫 빌런의 서사에 담아내다 보면 자신을 피해자로, 희생자로 간주하게 되고 수동적이고 부정적인 마음을 갖게 되기 쉬울 듯합니다.


이번 주말에 저는 아이와 한번 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눠볼 생각입니다. 두 가지 서사 중에서 이왕이면 영웅의 서사 안에 자신이 겪었던 고충과 어려움을 담아내보라고 알려주려고요. 빅터 프랭클 박사가 말한 그 공간에 고통과 역경과 장애물을 에너지로, 동력으로 여길 수 있는 힘을 채워 넣어 보라고요. 한 번 그렇게 해보면 앞으로도,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게 될 여러 가지 사건들을 더 잘 이겨내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지 모르지 않냐고 그렇게 전해줄 생각입니다. 그건 아마 아이에게 전하는 말이자 제 자신에게 당부하는 말이기도 하겠지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제 서사는 죽을 때까지 계속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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