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기계적'으로 살아야겠다?

- 목표의 '지속가능한 실행'을 위하여

by 강호

‘올 한 해는 기계적으로 살아야겠다.’


새해 들어서 지난해를 반성하고 신년 계획을 세우면서 이렇게 다짐해봤습니다. 좀 이상하게 들릴 것 같기는 합니다.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예전에는 ‘기계적’이라는 말이 무척 부정적으로 들렸습니다. 영혼이 없고 차가운 느낌 때문에요.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기계적’이라는 말이 상당히 긍정적으로 들립니다. 그게 ‘지속 가능한 실행’을 보장하는 어떤 능력을 묘사하는 형용사처럼 느껴지거든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입니다. 이성의 힘을 빌어 아무리 정교하고 체계적인 행동계획, 사업계획, 공부계획을 세워놓아도 아침에 일어난 작은 사건 하나가 그 모든 계획을 망가뜨립니다. 동료의 무신경한 한마디가 멘털을 흔들어놓기도 하고 아내나 자녀의 사소한 문제가 하루 종일을 불안에 들뜨게 하기도 하고요. 1년을 계획대로 목표를 추구하며 산다는 것은 이런 감정의 요동침을 제어하며 산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런 감정의 흔들림에도 아랑곳 않고 뚜벅뚜벅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조금 기계적이었으면 하는 거죠.


한편 인간은 매우 합리화에 능합니다. 제가 어느 철학자의 용어를 맘대로 가져다 제 맘대로의 용법으로 사용하는 게 ‘이성의 간계’입니다. 하루에도 열두 번씩 저는 이 ‘이성의 간계’에 당하고 맙니다. 저녁 무렵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하려고 다잡고 앉으면 머릿속에서 ‘내일 해. 시간이 얼마 없잖아. 해봐야 얼마나 하겠어?’ 이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시간도 없고 졸리기도 하고 해서 타협하죠. 그래 내일 하자. 게임 딱 한 판만 하고. 이래 놓고 밤늦게까지 게임입니다. 새벽에 운동을 하려고 졸린 눈을 비비며 옷을 주섬주섬 입을 때도 ‘매일 운동하면 뭐해. 배가 안 들어가잖아? 다이어트는 식사량을 조절하는 거야. 운동이랑 상관없어. 오늘은 쉬어. 내일 해.’ 이런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지요. 그렇게 1년이 흐르고요.


그런 저와 같은 인간이 특정한 분야의 기술이나 지식을 어느 정도 익히기 위해서, 또는 일정한 생산물을 꾸준히 생산해 내기 위해서는 다분히 ‘기계적’ 일 필요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옆에 번개가 내리 꽂혀도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낸다는 ‘기계성’이 없으면, 현대 사회의 환경은 우리를 무언가에 꾸준히 붙잡아 두지 못한다. 그런 의미에서 기계적인 자세, 꾸역꾸역 목표한 양을 채워나가는 자세는 ‘지속가능성’을 보호하는 갑옷입니다. 헤밍웨이,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가들은 일정한 규칙 속에서 기계적으로 일하며 자신들의 작품을 생산했습니다.


유튜버 신사임당님의 영상을 보다가 꽂힌 표현이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열’ 자 들어가는 것들은 언젠가 식는다. 열정도 식는다.”


그렇습니다. 열심히, 열정적으로, 열렬히, 맹렬히, 그렇게 하는 것도 좋겠지만 저는 기계적으로, 매일매일, 꾸역꾸역, 꾸준히 해내고 싶습니다.


2020년 한 해는 그렇게 ‘기계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면 원하는 목표를 이루고 원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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