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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호 Apr 10. 2020

일을 잘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 '열심히'에 관하여

일을 잘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성과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제가 생각할 때 회사에서 '성과'라는 것은 결국 '돈 되는 일'입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됐던 것은 젊은 시절 출판사에 다닐 때의 경험 때문입니다. 출판사 같은 대부분의 작은 기업들은 생산하는 제품의 규모가 작습니다. 직원이 수행한 일이 곧바로 매출과 연결이 되는 게 보인다는 점이지요. 훌륭한 필자를 섭외해 와서 책을 만들면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처럼요. 


문제는 안 팔리는 책입니다. 편집자는 정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편집자처럼 야근을 많이 하는 직업도 없을 겁니다. 월급도 낮고 별도의 야근 수당도 대체로 없습니다. 그렇게 책에 기울인 '혼신의 노력'이 아무 소용없이 흩어져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상하셨겠지만 '안 팔리는 경우'입니다. 그 안 팔린 책들은 창고에 쌓아둘 수도 없습니다. 보관료를 내야 하니까요. 결국 폐지값을 받고 폐지공장에 넘기는 거죠. 노력의 가치가 폐지값이 되는 거였습니다.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문학 연구자이자 철학자가 쓴 <<탐구>>라는 책에서 저는 이런 대목을 읽었습니다. 오래되어 정확하지는 않습니다만 상품과 구매자 사이에는 죽음과도 같은 심연이 있다, 상품이 그 심연을 넘어서 구매자에게 전달될 때 '가치'가 발생한다,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아주 인상 깊었습니다. 저 심연이 수많은 회사들을 망하게 하고 수많은 작가들을 절망시켰으며 여러 사람을 고통스럽게 했구나, 그런 아련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노동'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저 심연을 건너뛰게 만드는 노동이 가장 가치 있는 노동이겠구나, 하고요. 

    

그때부터 죽도록 일만 하면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렸습니다. 그건 착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지요. '가치'를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업무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 분산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야근이나 주말 특근으로 하는 것 역시 자랑하거나 불평할 일이 아니기에 가급적 하지 않고 줄이려고 애를 썼습니다. 회사 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겠지만 제 자신의 힘만으로는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최대한 안 하려고 애썼지요. 


일을 잘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한 달 경비를 계산기로 정산하다가 엑셀을 사용해보면 이전까지 자신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정산하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엑셀로 반나절에 할 일을 계산기로 1주에 하고서 열심히 일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고민됩니다. 


일을 잘 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노력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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