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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비완 Jan 24. 2024

선릉 - 땅울림이 있는 곳

  덧없는 인간사 길어봤자 백 년이 아니던가.

  오백 년이 지나는 동안 나는 변함없이 이 땅을 지켜왔다. 나의 주인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나는 배를 갈라 그를 내 안에 들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그는 후대에 성군으로 칭송받는 성종이라 불린 조선의 9대 왕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나의 주인이 매일 운다는 것이다.


그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그의 아들 때문이다.

나의 작은 주인은 키가 크고 피부가 희었다. 조선의 모든 여자들이 그를 흠모했고, 자신도 본인의 잘남을 아는지 여자에 심취했다. 후대에 그는 잔학무도한 연산군이라고 불리었다.


연산군은 어머니인 폐비 윤씨가 사약을 먹고 죽은 사실을 알고,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나는 그가 가여웠다.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했던가. 내 주인의 아들인 연산군은 중종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때 나는 내 안에서 울리는 곡소리를 들었다. 나의 주인이 내는 소리였다. 왕후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 슬피 우는 소리였다.


신은 역설적으로 성군이라 칭송받던 나의 주인에게 잔인한 운명을 주었다. 아들을 죽인 원수가 그의 옆에 묏자리를 파고 누웠다. 그 후로 강산이 수십 번 바뀌었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내 주인의 울음소리를 듣는다.


아들을 죽인 원수와 함께 몇 백 년을 이곳에 누워 있으면서, 지척에서 그를 부관참시하지 못해 들끓는 그의 분노를 나는 느낀다. 나를 둘러싼 십이지신들이 그를 뜯어말리느라 한쪽 모퉁이가 떨어져 나갔다. 매일 수만 명의 사람들이 땅 속을 울리며 내 곁을 지나간다. 그러나 내 주인의 울림만 못하다.


사람들은 나의 이름을 본 따 역명을 지어주기도 했다. 나의 주인에게 바치는 위로 같았다. 나는 오늘도 주인의 안위를 살피며 햇살을 맞이한다. 언젠가는 그에게 이 푸른 하늘을 다시 보여주고 싶다. 따스한 나의 품이 그에게 한줄기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주인을 애도하며, 선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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