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춘蘭春이

그 황금빛 노랑 눈동자

by 정건우

난춘蘭春이 / 정건우


새의 눈동자가 보고 싶었다. 그 눈동자와 찬하게 눈을 맞추고 싶었다. 창공의 골목길을 구분할 줄 알고, 바람의 굴곡을 용케도 알아채는 깊고 맑게 빛나는 눈동자를 바로 눈앞에서 들여다보고 싶었다. 마음의 자유를 광활하게 시하는 시선은 그 얼마나 높고 서늘할 것인가?. 허공에서 풍뎅이를 쏘아보는 그 정밀한 집중력은 새의 마음을 또한 얼마나 촘촘하고 치열하게 만들 것인가?. 눈이 오기 전에 나는 서둘러 새 잡는 창애를 만들어야 했다. 반달 모양으로 굽은 참나무 가지에 전깃줄을 서너 번 감고, U자로 휜 싸리나뭇가지를 넣어 돌리면 스프링 같은 탄성이 생긴다. 작은 대나무에 홈을 파고 줄에 매달아 나무 쐐기를 꽂아 고정시키고, 끝에 벼이삭을 달면 끝이다. 싸리나뭇가지에 그믈을 씌우면 새를 산채로 잡을 수 있다. 몇 번을 실패한 끝에 창애를 만들었다. 1976년, 열다섯 살, 중 2 때였다.

사명산 자락에서부터 양구벌에 이르기까지 백설기 은 눈이 왔다. 정림리 다리 밑을 흐르던 강물도 얼어붙어 세상은 온통 설원이었다. 하늘 아래 풍경이 모두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고, 실눈을 해야 겨우 보이는 느릅주기(종달새의 양구 방언) 무리가 끼루룩 울며 들판을 가로질러 낮게 날 뿐이었다. 나는 눈 덮인 논바닥 한쪽을 쓸어 볏짚을 깔고 창애를 놓아두었다. 그리고 나머지 볏짚을 여기저기 꽂아서 새를 유인했다. 그러고는 백오십 보쯤 떨어진 상엿집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새들이 깃들기만 기다렸다. 밤중엔 무서워 접근도 못하는 상엿집이지만 겨울 햇살이 비치는 판자 벽면 아래쪽은 뭉근해서 견딜만했다. 가끔씩 강을 따라 불던 칼바람이 들판 쪽으로 몰려와 우우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십 수일을 그렇게 죽치고 있었어도 새를 잡지 못했다. 나는 꽁꽁 언 채로 집으로 오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못 마땅한 눈빛으로 아버지가 끌끌 혀를 차셨다.

이듬해 5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어디서 새 한 마리를 데리고 오셨다. 베니다판으로 만든 새집 안에 병아리보다는 조금 큰 온통 흰 솜털로 덮인 새끼 새가, 들여다볼 때마다 “캬악 캬악”하며 짧고 강렬하게 짖는 것이 여간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난춘蘭春이 라는 샌데 새매 한가지라고 하더라. 네가 한 번 잘 키워봐.” 라시며 개구리만 잡아다 주면 된다고 하셨다. 부화한 지 며칠 안 되었으니 먹이고 길들이기는 쉽겠다고도 하셨다. 나는 흥분하여 내 방 바깥 벽면에 비를 피할 수 있게 지붕을 만들어 놓고 새집을 놓아두고는 당장 개구리를 잡으러 갔다. 집 주변의 논둑에 지천으로 팔짝대는 게 개구리였으므로 잡는 것은 식은 죽먹기였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개구리의 다리를 찢어 뼈 채 으깨어 젓가락으로 난춘이에게 주었다. 새는 그야말로 게눈 감추듯이 먹어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생물 선생께 여쭈어보니 난춘이는 “붉은배새매”의 이명異名이라고 하셨다. 여름철새로 4월에서 9월까지 볼 수 있는 중소형 맹금류라는 것이다. 매섭고 미끈한 자태가 일품이고 비교적 사육하기도 쉽다고 했다. 제법 흔한 새인데도 왜 나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일까?. 어떻든 나는 난춘이게게 푹 빠졌다. 학교 가기 전에 일찍 개구리를 잡아 싱싱한 먹이를 주었고, 젓가락을 들이댈 때마다 “난춘아” 라며 나직하게 이름을 부르며 정을 주려 애썼다. 아침 먹이를 비교적 넉넉하게 주고 학교에 간 사이 가끔씩 집에 들르시며 아버지가 또 먹이를 챙겨주시곤 하셨다. 방과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개구리 잡으러 가는 일이었다. 소식 듣고 몰려온 친구들이 먹이를 주겠다고 나섰다가 난춘이가 짖는 소리에 기겁을 하는 게 흐뭇했다. 결코 쉬운 새가 아닌 것을 애들은 몰랐던 것이다.

3주쯤 됐을 때부터 난춘이는 제법 새 다운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솜털은 빠져 갈색의 얼룩덜룩한 반점이 가슴을 뒤덮었고, 제법 날카로워지는 날개의 양 끝단에 검은 빛깔이 선명해지기 시작하였다. 머리와 어깨 부분도 밝고 짙은 회색이 도는 것이 깔끔하면서도 단정하게 변하는 것이었다. 이젠 제법 날갯짓도 하며 울음소리도 단정적으로 다르게 변하였다. 나날이 달라지는 난춘이가 참으로 신기했다. 나는 대충 잡은 개구리를 짓이기지 않고 그냥 던져주었다. “난춘아” 라며 낮고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내가 먹이를 줄 때만큼은 난춘이도 다소곳하였다. “꾜꾜꾜꾜꾜꾜”라는 낮은 소리로 반갑게 맞아주는 듯하였다. 어느 날 나는 작정을 하고 장갑 낀 손을 새장에 넣고는 난춘이 발목에 실을 둘렀다. 난춘이는 다소 당황한 듯하였지만 이름을 계속 부르니 잠잠해졌다. 새장에서 난춘이를 꺼내 날리고 거두기를 반복하였다. 난춘이는 크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참 많이도 컸다.

사명산 자락에서 바라보는 서천의 물줄기와 광활한 들판은 답답한 가슴을 확 트여주기에 충분할 만큼 통쾌하였다. 때마침 봉화산에서 부는 바람이 양구벌을 쓸고 있는 중이었다. 난춘이는 내 오른 팔뚝에 앉아 바람을 구별하고 있는 듯했다. 눈동자 바탕색이 노란 난춘이는 암컷의 요염한 자태로 다소곳하면서도 흔들림이 없었다. “난춘아” 그 그윽한 황금빛 노랑을 바라보며 이름을 불렀을 때, 난춘이는 흠칫 나를 보는 듯하였지만, 어느새 나는 알고 있었다. 이 눈빛은 서로 교환할 수 없는 것임을. 내 눈빛은 사람과 세상을 향할 것이며, 난춘이는 창공의 골목과 바람의 굴곡 쪽으로 향할 것임을. 나는 왼손 검지로 난춘이의 뒷덜미를 쓸어 주었다. 황금빛 노랑이 한번 크게 출렁거렸다. 발목의 실을 풀었는데도 난춘이는 가지 않았다. 나는 오른팔을 껏 흔들어 난춘이를 날렸다. “잘 가라 난춘아, 아들 딸 많이 낳고 잘 살아”. 앞쪽의 나뭇가지에 잠시 앉아 있던 난춘이가 얼마 후, 나의 연속되는 팔매질에 순식간 날아올라 사명산 쪽으로 이내 사라지는 것이었다. 바람이 죄다 그쪽으로 빨려 가는 느낌이었다. 한동안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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