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시평 #30 가도상회

시큼하고 아삭아삭한 인생은 물을 건너도 없더라.

by 정건우


가도街道란 말은 차車나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큰길을 말한다. 그런데 시 속의 "가도상회"라는 과일가게는 후미진 시장 골목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큰 길가에서 장사하다가 이곳으로 이사와 상호를 그대로 쓰는 것인지, 아니면 큰길에서 장사하듯이 번창하라는 의미로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겠다. 좌우간 저 가게에 나하고 초등학교 동창인 여식애가 살고 있었는데 한 번도 정면에서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그 가게 앞을 지나다 이런 말투로 구시렁 대던 소리를 딱 한 번 들은 적이 있을 뿐이었다. “ 야야, 모타리는 간장종지 맹키로 쪼잔한기 와 이리 또 병이 많노? ”. 사과 궤짝을 깔고 앉은 채 왕겨 속에서 꺼낸 사과를 목장갑으로 닦던 16세 소녀가 혼자 중얼중얼 대던 말이다. 마치 자신에게 말 걸듯이.



강원도 양구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일은 흔치 않다. 소녀의 경우 100% 부모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소녀가 전학을 왔다는 소리는 못 들었으므로 소녀의 부모는 일찍부터 이곳에 정칙을 한 분들로 여겨진다. 경상도에서 강원도 양구로 이주한 가족사 속에서 소녀는 부모의 억척같고 강인한 성격까지 물려받은 듯하다. 나와 소녀의 기억은 거기서 끊기고 삼십 년 후 동창회 모임에서 연결된다. 소녀는 사십 대 말의 화끈하고 드센 왈가닥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감은 눈으로 웃는 오르간 건반 같은 이빨이 인상적이었다. 미국에서 일시 귀국한 지 며칠 만에 소식 듣고 부리나케 달려왔다고 한다. 나에게도 서슴없이 말을 걸고 목젖이 보이도록 큰소리로 웃고 유쾌하기 그지없도록 분위기 잡아가며 활달하게 잘도 놀았다.



남편을 만나 미국에 갔다는 데 남편 얘기는 더 하지 않았다. 현지에서 살기 시작한 지 십 년 후부터 아프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투병 중이라는 데, 어디가 아프고 치료는 어디서 떻게 진행 중인지는 다친다고 묻지 말란다. 가끔 하는 기침이 대신 답하는 듯했다. 와인 몇 잔으로 얼굴은 발그레한 데 엄청 빨간 홍옥빛 입술로 취한 듯 조곤조곤, 그러나 똑똑 부러지는 소리로 타이르듯 말하는 것이었다. 비행기 타고 물 건너갔으나 거기도 별 볼 일이 없더라며 다들 열심히 잘 살라고. 살아생전에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로만 백날 건강하라고 톡 보내 봤자 다 쓸데없는 일이고, 맥문동에 건도라지, 배 넣고 달인 탕제라도 몇 박스 보내야 하나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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