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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방위병 비화 1

반응이 별로면 2편은 없다. 여기서 쫑낸다.

by 정건우


해병대 방위병 비화 1 / 정건우

나는 해병대 방위병 출신이다. 동사무소에서 예비군 훈련 통지서 들고 배달 다니던 동洞(발음 주의) 방위가 아니라 소총 들고 해안을 경비했던 일종의 전투방위였다. 참고로 1983년 8월 5일 새벽, 월성 양남 앞바다로 침투했던 무장간첩 5명을 사살한 해병 방위병 오 아무개가 우리 대대 소속 선임이다. 일설에 해병 방위는 육군 병장과 맞먹고 놀았다고 하던데, 나는 병대 방위병 단독 직제에서 근무했던 관계로 그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제한된다. 좌우간 난 그 해안 방어 경계병으로 꼬박 14개월을 근무했다. 근무 지역 및 구체적 조직 체계에 대한 질문의 답변도 군사 보안상 제한된다.


얼떨결에 방위되고 11개월 후, 작전 구역 6개 해안초소 근무자 중 군번이 가장 빠르다는 이유로 나는 군기 오장이 되었다. 오장伍長이란 호칭은 일본식 직급 체제에서 쓰던 말을 해병대에서 일정 기간 차용한 말 같던데, 그걸 알리 없는 선임들이 전통이랍시고 최고참 전임자가 소집해제(방위병은 제대가 아니라 소집해제라 함) 하는 날, 후임자에게 물려주던 일종의 가정 행사 유사 용어다. 나는 당연히 빨간 명찰을 달고 있었고 당시 계급은 일병이었다.


어쨌든 나는 카빈 소총을 들고(실탄 15발 소지) 해안의 백사장을 격일제로 야간에 경비했다. 국가 전략기동부대의 일원으로서 선봉군임을 자랑하던 현역 해병 대타였다. 나 같은 얼치기에게 백사장을 지키라는 게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패 죽이리라고 마음먹던 최고참이 떠난 다음 날 아침, 밤샘 근무를 마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전 대원 24명을 방파제에 집합시켰다. 영락없는 거지들이다. 나는 복무규정을 파격적으로 새로 제정하고 군율로 시행한다고 엄포하며 군기 오장의 일성을 날렸다.


- 군령軍令 -

1. 오늘부로 아침 방파제 순검(점호)은 없다.
2. 출근 시 군복과 군모에 각이 안 잡혀 있으면 사살한다.
3. 나(군기 오장)에 대한 호칭은 다음과 같이 한다.

- 1 대 1 상태 : 각하

- 2인 이상 대 오장 : 장군님

- 오늘부로 군기 오장이란 말을 없앤다.
4. 경례는 기수 차이를 존중, 손가락 갖다 붙이는 위치가 다르도록 한다(첨부 도면 참조)
5. 근무는 1인 4시간 이상 없고 선, 후임 차별 없이 똑같이 한다.
6. 퇴근 시(아침) 소라다방에 모닝커피 마시러 가다가 발각되면 사살한다.
7. 이상 군령을 어길 시 즉각 조치가 있음을 명심하라.


뭐, 대충 이랬다. 그 살인 충동이 생길 만큼 괴로웠던 아침 방파제 순검을 없앤다니 환호와 박수 소리가 터지고, 여기저기서 웃고 까불길래 한 놈을 골라 즉각 조치에 들어갔다. 야구방망이 위력은 가히 미사일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거지들은 완전 탈거지화 되었다. 저렇게 강력한 정신력을 가진 인간을 주변에서 본 적이 없었단다. 그 이후론 아주 내 세상이 되었다.

"각하, 쐬주 한잔 어떠하십니까?"

"내가 알코올을 경멸하는 체질인 걸 귀관은 모르나?"

"안주만 드시면서 자리를 빛내주시면 됩니다 각하!"

"그거야 쉽지"

"영광입니다 각하" 이런 식이었다. 이런 식의 대화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오갈 수 있다는 것에 누구보다 놀란 게 나다. 후줄근하던 군복도 풀 먹여 다려 놓으니 폼이 났다. 적당히 물 빠져 생긴 웨이브가 기가 막히게 이쁘다고 정 다방 미스 최가 난리였다. 아무렴 군대는 폼생폼사다. 나는 그것이 만유인력의 법칙과 비슷한 진리로 믿었다. 그러길 한 달 후, 내가 영웅이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 반응이 별로면 2편은 없다. 여기서 쫑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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