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85세가 될 시바타 마사토상께 경의를 표한다.
시바타 마사토상! / 정건우
07년, 나는 플랜트사업부를 총괄하던 PM 부장이었다. 그때 회사는 포스코의 아주 중요한 환경설비를 계약 추진 중이었다. 국내에선 시도조차 해보지 않은 설비로, 30년 전 독일에서 초도 공급한 장치를 Revamping 하는 프로젝트였다. 금액은 450억에 달하며 공급 기간도 1년 정도 걸리는 작지 않은 규모였다. 설계팀의 창의적인 디자인 결과로 성능과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였으나, 한 가지 난제가 있었다. 제작 특성상 플라노밀러라는 대형 평면가공기계가 필요했다. 나는 머리를 싸맸다. 후속 설비 추진 여부를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장비 투자는 어렵고, 기계가공을 아웃소싱하려니 기술 유출이 염려되었다. 1회성으로 쓰이는 기계임을 감안, 부담이 적은 중고 기계를 구입하자는 결론을 내고 전국의 판매상에 수배를 의뢰하였다.
그러나 베드 폭이 2.4미터에 길이가 12미터가 넘는 중고 기계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똥줄이 탄 나는 국내 유수의 공작기계 메이커에 공급 가능 여부를 타전하였고, 납기 1년에 설치 금액 28억짜리 견적서를 접수하였다. 포스코 설비 계약 한 달을 남겨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대응 방안에 고심하던 그때, 서울의 한 중고 공작기계 전문 판매상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내가 원하는 기계 사양에 맞춘 듯이 들어맞는 중고 기계를 일본에서 발견했다는 것이다. 기계의 희소성에 비추어 계약을 서두르지 않으면 놓치기 십상이니 서둘러 가보자는 전언이었다. 칠십은 넘어 보이는 판매사 사장이 실없이 농하는 것은 아니실 테고, 나는 한시가 급했으므로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만나자며 서둘러 비행기를 탔다.
기계는 서오사카의 한적한 도농복합도시 도로변에 있었다. 그리 크지 않은 공장은 오래되어 낡아 보였고, 지붕이며 벽체, 물받이 라인 여기저기에 보수한 흔적이 우표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비교적 낮은 지붕 안에 그렇게 큰 대형 공작기계가 숨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예상대로 기계는 공장 바닥을 1.5미터쯤 파내어 베드면과 바닥 레벨이 거의 일치하도록 설치되어 있었다. 내가 원했던 사양 그대로이며, 오래된 기계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잘 관리되어 있었다. 기계 명판을 보니 메이커는 그 유명한 丸福(마루후쿠)였으며, 제작 연도는 昭和(쇼와) 34년 즉, 1959년이다. 연식에 비해 믿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관리상태라 나는 흡족하여 일단 구매 의사를 전했고, 일본 대표와 사무실에서 후속 사항을 논의하였다. 가격과 인도 일정까지 협의가 됐을 때, 갑자기 공장에서 통곡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시바타 마사토(柴田政人)라는 67세의 자그마한 남자가 기계 기둥에 등을 기댄 채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열아홉 살 때부터 바로 한 달 전까지 이 기계를 작동해 온 오퍼레이터란다. 사장의 고향 후배며, 중학교 졸업 후 이 공장에서 일한 지 51년, 오로지 이 기계만 작동한 지 48년째라는 것이다. 거래처의 일감이 끊겨 공장 가동을 중단한 지 한 달째, 기계가 매각되면 공장 자체를 없앤다는 통보를 할 때도 울지 않던 사람이 기계가 매각된다니 저렇게 슬피 운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온 사장의 눈이 벌건 것을 보고 나는 마음이 몹시 심란하였다. 48년이면 한 사람의 생애가 고스란히 녹아든 세월이다. 어디 한 사람뿐이겠는가?. 그의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의 꿈과 희망, 기쁨과 슬픔의 추억까지 전승되고도 남을 소중한 시간이다. 나도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나는 이 기계를 구매하게 된 배경을 시바타 마사토에게 설명하였고, 한국 공장에 이설 하는 과정부터 시운전까지 일체 공정의 감리와 감독을 그에게 요청하였다. 실질적인 휴직 상태였던 그는 무상으로도 해 줄 용의가 있다며 반가워하였다.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라 나는 그가 상당히 흡족해하는 수준에서 경비를 책정하여 합의를 보았다. 비록 가동률이 많지 않게 운용되는 상황이더라도 기계는 정확하게 설치해야 한다며 그는 사전 조치 작업 내용을 세세하게 알려 주었다. 마땅한 설치 도면이 없었던 터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조차 그는 A4 용지 열다섯 장에 달하는 기초 작업 스케치 도면과 설명서를 컬러링까지 하며 꼼꼼하게 작성해 건네주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직접 개발한 치공구까지 무상으로 제공하겠다며 다소 들떠 있었다.
해체된 지 열흘 만에 기계는 컨테이너 일곱 개에 담겨 무사히 포항 공장에 도착하였다. 하루 전날 미리 출장한 시바타 마사토는 사전 작업한 토목의 기초 공사 부분을 꼼꼼하게 확인하였고, 미흡한 사항은 수정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그의 꼼꼼한 지휘 아래 거의 백여 톤이 넘는 육중한 기계의 부품이 결합되어 갔다.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감동했는지 모른다. 노련한 기계 작동자가 아니라 시바타 마사토는, 장구한 시간을 함께 보낸 제 분신에게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흡사 제사장처럼 성스러운 기운을 느끼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열흘에 걸친 그의 지휘 덕분에 기계는 시운전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는 그와 끝까지 점심 식사를 같이 하였다. 한국에 처음 왔다는 그는 동태탕과 삼겹살, 메기매운탕을 무척 맛있어했다.
두 달쯤 지났을 때, 시바타 마사토가 아내를 대동하여 회사를 방문하였다. 남편의 분신이 새롭게 이식된 현장을 아내가 그렇게 보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 남편에 그 아내라고 나는 감탄하였다. 전형적인 일본 여성의 부드러움과 귀여움을 동시에 간직한 그의 부인에게 회사는 화장품을 선물하였다. 나는 마사토 부부를 경주 요석궁으로 모시고 가 한식을 근사하게 대접해 주었다. 4박 5일의 한국 여행을 마치기 전날 아내와 같이 회사에 잠시 들른 시바타 마사토는, 기계색으로 근사하게 광을 낸 자신의 분신에 기대어 또 흐느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사연을 회사 내 게시판에 소개하여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올해 85세가 될 시바타 마사토상께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