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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Nov 11. 2020

동물한테 너무하는 세상

<이스라디오>를 듣다가

EBS 라디오 <이스라디오>를 팟빵으로 즐겨 듣는다. 작가 이슬아가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낭독 방송이다. 한동안 잊고 있다가, '코로나 아냐'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는 몸살로 며칠 드러누워 있다 보니 지끈지끈한 두통도 잊을 겸 들어가게 되었다. <수줍은 희는 어디에>라는 제목의 상편을 들은지라 하편을 들으며 혼자서 킥킥거렸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사람이 가끔씩 보여주는 위력에 관한 이야기, 세 시간 동안 친구들 이야기만 듣고 있던 희가 친구 집을 나서며 모기만 한 소리로 '나, 치마 가져왔는데...'라는 말을 흘려 다시 방으로 들어가 상상도 못 했던 그녀의 멋진 훌라춤을 감상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 올라온 <좋은 동물이 되고싶다, 상하>가 있어 계속 들었다. 평소 비건을 지향하는 작가가 지난여름 광화문에서 30명의 여러 창작자들과 함께한 ' 절멸- 질병 X 시대, 동물들의 시국선언'의 뒷얘기였다. 각자 동물 한 종류를 정해 그의 입장이 되어 글을 낭독하는 생명다양성 재단이 기획한 행사였다. 구제역으로 살처분되는 돼지들의 참상을 용기 내어 보러 간 적 있는 슬아 작가는 돼지가 되어 보기로 한다. 이 일은 자신의 글쓰기 큰 화두인 주어 바꾸기의 연장선에 해당되지만 어떻게 감히 동물의 입장이 될 수 있을지, 자신 없고 100% 실패할 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덜 실패하기 위해 글을 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낭독했다. 익히 알고 있는 공장식 사육으로 인해 항생제에 뒤범벅이 되고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다 우리 식탁에 오는 이야기였지만 글의 주어가 돼지로 변하니 그 느낌은 사뭇 달랐다. 결정적으로 우리가 먹는 고기들이 '고통의 조각' 이란 말에서 유쾌한 글로 겨우 잠재웠던 두통이 배로 밀려오고 속이 다시 울릉 거리기 시작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전염병, 환경문제... 등 지구에 먼지만 한 존재로 살아가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큰 흐름에 휩쓸리면 안 되겠다는 경각심은 있으나, 이미 편리함에 길들여져 공들여 분리수거를 하다가도 귀찮아서 마구 종량제 봉투에 넣기 일쑤다. 고기를 좀 줄여보려 한동안 안 먹다가도 이미 내 몸은 알고 있어 고소한 삼겹살에 무너지고 만다. 어떡해서든 면죄부를 좀 받아 보려고 그래도 채식에 기웃거리는 당신은 좀 낫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해서 냉큼 산 <비기닝>은 읽다 말았다. 고통의 조각을 먹기 위해 우린 환경을 파괴하고  열심히 돈을 벌고 있구나... 겁쟁이에다 에고이스트인 난 한없이 충격이다.


'좋은 사람'은 먹이 파라미드 꼭대기의 위치에서 인간 중심적으로 평등, 박애,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좋은 동물'은 다윈의 생명의 나무 한 가지에 앉아 다른 생명들과 지킬 건 지키며 함께 살아갈 뿐이다. 글쓰기는 샤머니즘적인 요소가 있다는 말도 놀라웠다. 영과 영을 이어주는 영매처럼 글 쓰는 사람은 모든 생명들이 주어가 되는 글을 쓸 수 있어 서로의 아픔과 고통을, 물론 기쁨까지 공유하는 세상에 다가서게 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이들에게 책 읽어 주고 글쓰기 선생을 할 때 학부모와의 상담에서 영혼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호되게 당한 적 있다. 어떻게 교육을 하는 사람이 그런 무당 같은 말을 쓸 수 있냐고.


어떤 사상가도 활동가도 주지 못하는 영혼의 울림을 어린 선생은 또 주었다. 불쑥 내 방에 들어와 귀에다 넣었고 그것은 몸을 타고 내려와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 콕 박혔다. 당장 식구들 성화에 사두고 해 먹지 못한 냉장고에 있는 돼지 쪽갈비가 생각나는, 어차피 해 먹을 거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이 미약한 영혼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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