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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May 12. 2021

커피차


동(東)향인 고향집을 옆에서 바라보는 정남향 이웃집이 있었다. 5~ 6명 자식이 기본인 시대에 그 집은 달랑 아들 한 명 그것도 객지에 나가 있어 단출하게 중년부부만 사는 시골에서 보기 드문 집이었다. 덥수룩한 아저씨에 비해 자그마한 키 뽀얗고 갸름한 얼굴, 단정하게 쪽진 머리를 한 아주머니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대신 가녀린 그 여인의 이른 죽음 이후 두 번째로 들어온 아주머니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두 번째 부인은 이미지가 완전 다른 사람이었다. 쪽진 머리는 같으나 큰 키에 거무티티한 피부, 살집 있는 몸, 거기다 넉살까지 좋아 동네 마실을 자주 다녔다. 지역감정이 시퍼렇던 시절 깡 경상도 땅에서 심한 전라도 사투리를 거침없이 쓰면서.


아침밥 먹고 나면 건너편 우리 집으로 자주 건너왔다. 회장님! 아버지를 부르는 소리다. 아버지는 그런 회장님이 아니다. 안방에 불쑥 들어와 앉으며 아버지랑 맞담배를 피웠다.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메이드 인 프랑스 유리 찻잔에 커피 하나, 설탕 둘, 프림 둘 커피를 타 왔다. 어른들은 단 커피를 홀짝거리며 왁자지껄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방 카페는 대화가 필요한 이웃들과 만남의 장이었다.


어린 마음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아주머니가 큰 주전자에 커피를 잔뜩 타놓고 밥만 먹고 나면 들이킨다는 것이다. 아버지 당신도 달달한 커피를 즐겨하시면서 커피는 몸에 안 좋다고 늘 주입시킨 탓에 난 그 아주머니가 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다니! 큰일 날 일이었다. 아주머니의 무거워 보이는 외모도 과하게 마신 커피 탓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그렇게 좋아하던 아버지도 그 아주머니도 이젠 저 세상 사람들이 되었다. 물처럼 마시는 커피에 기겁을 했던 나도 요즘 밥 먹은 후 물처럼 커피를 마신다. 시작은 생수 페트병이 마음에 걸려 물을 끓여마시기로 작정하면서다. 남은 드립 커피가 아까워 보리 티백 대신 몇 방울 떨어뜨려 보았더니 색깔도 맛도 괜찮다. 냉장고에 두었다 먹으면 보리차 못지않게 구수하고 시원하다. 내용은 다르지만 커피는 커피다. 그리고 커피도 식물이고 나무고 열매다. 처음부터 시커먼 악마의 가루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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