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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n 21. 2021

태양 속을 걷다

하지축제 2021

진실한 원예가는 6월을 풀을 베는 달, 진딧물과 전쟁을 치르는 달이라고 말하더라. 통통 물오른 진딧물마저 쓰윽 문지르면 초록이 배어 나올 것만 같은 만물이 성성한 6월은 태양이 가장 높아지는 달, 찬란한 여름의 시작이다.


작년 하짓날 글에서, 언젠가부터 마음에서 일어나는 하지 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어느새 우리가 사는 행성은 어김없이 태양을 한 바퀴 돌아 시간의 화살이  이날에 도달하고 말았다. 요즘 새벽 5시만 넘겨도 해가 뜨고 저녁 8시가 가까워야 해가 지니, 장장 15시간 가까이 우린 자연의 빛 속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일 년 중 가장 많이 주어진 밝은 시간들 그러나 곧 방향을 돌릴 정점, 한더위 오기 전 청량한 더위가 사무치게 달콤하고 애틋해 용감하게 태양 속을 걸어가 보기로 했다. 이웃 작가님 글에서 ‘태양을 향해 걷는다’라는 글귀가 쏙 들어온 날, 뜨거운 햇볕 세례를 받은 듯 이미 내 마음은 달궈지고 있었다. 그래, 올해의 하지 축제는 대낮에 걷기다!


대낮에 걷기가 결심이 필요한 이유는 오래도록 시달려온 빈혈 때문이다. 여름에 햇빛 속을 걷고 나면 언제나 두통이 뒤따라와 며칠이 괴로웠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더니 신기하게도 완경을 향한 몸짓은 정말로 내 몸에 피가 모인 듯 빈혈 증상이 줄어들고 기운이 예전보다  낫다.


흐린 날들 사이로 햇볕 쨍쨍한 날을 붙잡아 보았다.



수확을 기다리는 감자밭,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번들거리며 커가는 옥수수, 세력을 넓히고 있는 담쟁이 덩굴들, 왕성한 대낮의 햇볕을 이토록 푸르게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니. 그늘만 찾던 나약한 존재도 이들 흉내를 내며 따끔한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이글이글한 여름 속으로 들어간다.






저녁 8시가 넘어도

보랏빛 라벤다밭 벌들은 날 저문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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