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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l 17. 2021

푸른 꽃은 어디에

카를 차페크 <오른쪽 주머니에서 나온 이야기> 중, <푸른 국화>


  산길 풀섶에 달개비꽃이 한 송이씩 피기 시작했다. 수레국화, 푸른 수국, 파란 나팔꽃... 아메리칸 블루도, 찾아보면 푸른 빛깔을 가진 꽃들이 제법 있지만 여름에 흔하디 흔한 이 달개비의 파란색에 비할까. 나비 날개 같은 둥근 파란 잎 사이 노란 꽃술에 대비가 되어서인지 유난히 파란색이 맑고 청아한 분위기다. 자연에 파란색이 제법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파란색 꽃은 신비스럽고 귀한 이미지다. 그래서일까. 체코 작가 카렐 차베크의 단편 <푸른 국화> 이야기도 그러한 이미지가 가미되어 오컬트한 분위기를 살짝 풍긴다.

               

  마을에 ‘클라라’라는 바보 소녀가 있었다. 아는 사람을 보면 무조건 달려들어 안으려 하고 지폐를 주면 울고 동전을 주면 좋아서 팔딱팔딱 뛴다. 귀도 멀고 벙어리지만 여기저기 온 마을을 즐겁게 쏘아다니는 천진난만한 소녀. 어느 날 그녀의 손에 들풀 꽃다발이 들려있다. 그 꽃다발 속에 어떤 사람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꽃이 섞여 있었으니, 국화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푸른색!

푸른 국화, 진짜 푸른 빛깔이었어. 마치 접시 패랭이꽃처럼 푸르렀는데, 약간의 회색빛도 감돌았지. 꽃받침은 공단처럼 매끄럽고 발그레했으며, 꽃술은 초롱꽃처럼 탐스러웠어.

  푸른 국화를 단박에 알아본 이 사람은 루베니츠 성의 왕자를 모시는 정원사였다. 주인인 왕자는 대단한 수집가여서 영국의 모든 나무와 네덜란드의 화초 1만 7천 종을 들여왔고, 더군다나  중국에서 들여온 연보라색 국화를 애써 키우다 죽인 안타까운 일까지 있다. 그토록 꽃 피워보고자 했던 푸른 국화가 바보 소녀의 품에 있다니. 흥분한 정원사는 꽃을 빼들고 주인에게 달려갔고 흥분한 주인은 클라라에게 달려온다. 그 사이 클라라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애간장이 타고 있는 두 남자 앞에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나타나 더욱 싱싱한 푸른 국화 한 다발을 정원사에게 덜컥 안기는데

클라라, 이 꽃 어디서 났지?
클라라, 이 꽃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렴.

  

  그들은 똥줄이 탄다. 마차에 태워 꽃이 있는 곳을 가보려 했지만 클라라는 신이나 함성을 지르며 자꾸 먼 곳만 가리킨다. 마차 타는 게 그저 즐거울 뿐이다. 윽박지르고 달래도 보지만 그녀에게서 꽃이 있는 곳을 알아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결국 정원사가 여러 정황들로 봐서 꽃 위치를 반경 2마일 이내로 규정하고 저명인사인 왕자의 권력을 이용해 형사, 경찰, 시의회 사람들, 학생, 교사… 등 수많은 사람들이 꽃 수색에 들어가지만 푸른 국화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클라라는 저녁 무렵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자정이 지나면 신선한 푸른 국화 다발을 들고 헤벌쭉 나타난다. 바보 소녀를(꽃을 다 꺾지 못하도록) 감옥에 가두는 어이없는 일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뜻이다. 그나저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지역인 그곳에서 파란색 꽃은 왜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소녀의 정체는? 여기까지 읽고 나면 파란 국화만큼 클라라의 존재가 궁금해진다. 언제나 파란 국화를 손에 넣을 수 있는 소녀, 혹시 바보인 척 하며 마녀 수업을 받고 있는건 아닐까.


  정원사는 뜻밖의 상황에서 푸른 국화를 발견하게 되는데, 기꺼이 꽃도둑이 되어 꽃을 모두 캐어 안고는 주인이 있는 루베니츠를 영영 떠나 자신의 고향집에서 푸른 꽃을 피우는 호사를 누린다. 약간 푸른색이 감도는 브리타니와 아나스타샤가 아닌 오직 푸른 국화 ‘클라라(소녀 이름을 따 명명함)’를, 세상에서 유일하게 키우는 사람이 된다. 짧은 이야기에서 긴장감이 돌고 미궁에 빠지기도 극적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한 발짝 물러나 보면 그저 다양한 사람들이 겪는 다양한 일상일 뿐이다.


  언젠가 이사 간 집 마루에 새로 장만해 걸어둔 벽시계가 하룻만에 깜쪽같이 사라진 일이 있었다. 온 식구들을 추궁하며 시계 행방을 물었지만 아무도 연루되지 않았고 주택에 이사 온 탓을 하며 분명히 좀도둑이 들었을 거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왜 하필 비싸지도 않은 조그만 벽시계만 훔쳐 갔을까? 아무리 없는 집이기로서니 그렇게 훔쳐갈 게 없나??? 아이들이 빠져나간 방이 더없이 어지러워 보였다. 작은 주택에도 경비 장치를 달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고, 우린 그 집에 7년을 살다가 지금 집으로 이사를 왔다. 이삿짐을 싸던 날 모든 미스터리는 풀렸다. 시계가 어떤 충격으로 떨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용히 떨어지며  바로 밑 작은 가구 뒤편에 역시 떨어져 있던 종이에 대충 덮여버린 것이다. 분명 그곳을 샅샅이 훑어봤었지만 색깔이 비슷해 발견되지 못한 건지, 제법 둥근 시계가 말이다. 지나고 보니 모두가 걱정한 주택에 이사 간 긴장감이 상황을 그렇게 몰고 간 것 같기도 하다. 7년 만에 햇빛을 본 시계는 지금 집에서 3년째 부지런히 바늘을 돌리고 있다.


  푸른 국화 이야기에도 어떤 마법이나 미스터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탐욕스러운 왕자, 정직하지만 평생 남의 물건을 훔친 일곱 번의 도둑질이 모두 꽃인 정원사, 제정신이 아닌 데다 결정적으로 글을 읽지 못하는 소녀 클라라가 얽히면 오컬트한 일상이 만들어진다. 모두가 바라는 절대적인 그 무언가는 푸른 꽃처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에 있지만 어쩌면 못 보고 있을 뿐이다. 생각 없이 길들여진 일상이 또 걸림돌이 되어.


  푸른 달개비꽃을 보며 푸른 국화를 생각하며 산길을 내려오는데 생전 처음 본 푸른 새가 눈앞에 나타났다....헐!내 마음이 물들인 새일까. 강변에 가만히 앉아 뒷모습으로 이야기를 한다.


물총새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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