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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배우다가

by 여름지이


어린이였을 때 동네 친구들은 거의 곡예사에 가까웠다.

머리 위로 올라간 고무줄에 다리를 거의 직각으로 뻗어 걸쳐 내리기도, 땅에 땅! 쳐 끝없이 올라간 조그만 공을 정확히 조준하여 가랑이 사이로 통과시켜 꼬리뼈에서 탁! 잡기도, 손바닥에 자갈돌을 잔뜩 모은걸 획! 뒤집어 그 돌들이 하나도 떨어지지 않으면서 손등에 그대로 내려앉게도 했다. 아슬아슬 층까지 이루며.

나는... 먼 훗날 지금 이렇게 글로 상세히 적어야 되는 임무를 그때 벌써 맡기라도 한 듯 하늘 아래 할랑이는 그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다. 할 줄 모르니까. 움직이는 걸 썩 즐겨하지 않았던 이 몸에게 고무줄놀이, 공놀이, 공기놀이는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할 영역이 아니었다. 궁금하여 집에서 혼자 깔짝거렸던 것 같은데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한 번은 하굣길 무덤가 공터에서 벌어진 공기놀이에 합류한 적이 있다. 그때 나에게도 손등에 닿지 않고 올라간 돌이 있었다. 딱 한 개. 한 개라도 올라간 게 얼마나 놀라웠는지 지금 이렇게 기억이 난다.


친구들이 일상으로 하던 놀이를 잘하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했지만 그래서 안타까웠던 기억은 없다. 그냥 그런가 보다 싶었다. 어른이 되어서 또 다른 이들이 잘하고 열심히 하는 일을 잘하지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은 것처럼. 나이를 먹으며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에서 여우 성향과 내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적 있다. 포도를 못 따먹으니까 시다고 단정하고 깨끗하게 물러나는 여우 모습 말이다.


우연히 알게 된 ‘르상티망’이란 심리학 용어를 보니

르상티망의 본질이란 약자의 질투와 패배자의 시기심을 말하고, 승자를 마음속으로 인정치 않는 원망의 뜻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물리적으로 패배했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약자의 자기 정당화를 말한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이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니체도 ‘여우와 신포도’ 예를 들며 르상티망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열등감을 노력이나 도전으로 해소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갖고 있지 않거나 잘하지 못하는 걸 노력이나 도전으로 성취하려는 경향이 적은 건 맞고 자기 정당화, 합리화 경향이 있는 것도 맞지만, 열등감, 질투, 시기심, 우월감 같은 심리는 어쩐지 억울하다.


여우와 나를 동일시했다면 이솝에게 이렇게 뒷 이야기를 부탁한다.

어느 날 남이 딴 포도를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여우는 신포도라 여긴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 별로 먹고 싶지 않아, 그때 진정 포도가 먹고 싶었는지 호기심이 반이었는지 잠시 고민했다. 자꾸 권해 한번 먹어보니, 신포도라 생각하고 지나올 만큼 역시 여우가 탐할 맛은 아니었다. 너무 달아 쉽게 질리는 맛이라 한번 맛보는 걸로 족했다.


철봉 놀이는 달랐다. 다양한 높이의 철봉에서 몸을 휘휘 날리는 아이들 모습은 곡예를 넘어 경이로웠다. 무서웠지만 한번 해보고 싶었다. 쉬는 시간이 되면 혼자 제일 낮은 철봉대로 슬그머니 다가갔다. 몇 번 배를 철대에 올렸다 내려다를 반복하다 에라 모르겠다, 눈을 찔끈 감고 상체를 수그려 버렸고, 고함소리와 함께 세상이 휙 돌았다.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이 벌게지고 넋이 나간 상태로 난 철봉대 앞에 다시 툭! 서버렸는데, 상쾌한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하고 또 하고 세상을 자꾸 돌렸다. 마침내 거꾸로 매달려 파란 하늘을 가만히 응시할 수 있는 시간이 왔고 몇가지 더한 몸놀림으로 철봉대랑 놀 수 있었다.

포도처럼 돌아설 맛이 아니었다. 용기를 내어 따려 애썼고 따서 먹어보니 질리지 않는 열매였다.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한 지 4일째다. 오늘 연습의 마지막 장면은 이제 넘어지지 않고 양발 젖기가 겨우 되어 동네 농구 연습장을 벗어나 자전거길에 올렸다가 완전히 엎어져 버렸다. 조금 바람을 느끼는 순간 너무 흥분이 되어 멈추기를 시도하다 그렇게 된 것이다. 넘어지는 찰나에 어머! 세상에 내가 영화를 찍고 있네, 싶었다. 꼭 어디서 본 그런 상황이 연출 아닌 연출이 되었다. 일어나며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도… 다행히 겉으론 종아리 타박상에 그쳤다.

50이 넘어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하니 꼭 어린 시절 처음 철봉 탈 때 기분이 든다. 결심하고 시작하는데 무지 많은 세월이 걸렸다는 게 다르지만 두려움이 넘쳐도 해보고 싶고, 연습하며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으면서 나아지는 내 모습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즐길 수 있는 것까지.


르상티망에 가까운 그러나 르상티망은 아닐지도 모르는 내 성향의 근원은 형제들과 뚝 떨어진 나이 차이로 경쟁에 익숙지 않아서라고 생각해 본다. 똑같은 길을 다수가 달려들어 뛰는 달리기에서 누군가는 넘어지고 누군가는 일등 하며 누군가는 존재감 없이 들어오는 상황이 견디기 힘들다. 상처받기도 상처 주기도 싫은 마음, 기대하고 기대를 주고 싶지도 않은 마음, 어쩌면 지극한 자기애가 끼어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든 혼자 하는 게 편하다. 혼자 하는 사람들끼리 나란히 걸으며 서로 필요할 땐 나누고 도와가면 평화롭고 평등한 세상의 일원이 되고 싶다.


만약 몸살이 나지 않는다면 다음 주말쯤엔 다른 라이더들과 자전거 길을 나누어 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어본다. 무더위가 시작되었지만 인근 자전거길은 대부분 벚나무 터널이라 그늘이다. 달리면 바람까지 일어난다. 쨍쨍 햇살 속이면 어떠랴. 20년이나 꿈꾸어 오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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