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덥지근하여 눈을 떠보니 아직 날이 밝지 않았다. 마루 에어컨이 꺼져 있고, 실내 온도는 29도. 연일 술자리로 체기가 있던 사람이 껐나 보다.
잠때가 묻은 상태로 허영허영 창문을 열기 시작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듯 바람이 쑥 불어 들어온다. 뜻밖에도 산들바람처럼 잔잔하고 시원한 바람이. 마치 한여름 속 첫가을 바람처럼, 불쑥.
낮의 온도를 생각하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고 고맙다. 다시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잠은 벌써 저만치 가고 있다.
휭 휘잉 휘이잉 휘이이잉
달큼한 석류도 날려 버려라
시큼한 모과도 날려 버려라
휭 휘잉 휘이잉 휘이이잉
마침 어제 읽은 <바람의 마타사부로> 첫머리에 나오는 노랫말이다.
‘마타사부로’는 일본 이와테 지방에서 모시는 바람의 신이다.
이와테 현 출신인 동화작가이자 시인, 교사, 농촌 계몽가였던 미야자와 겐지(1896~ 1933)는 매년 불어오는 태풍을 ‘사부로’라는 꼬마로 의인화하여 그 지방의 자연과 정서를 표현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 입춘으로 부터 이백십 일째 되는 9월 1일 개학날 전학을 온 사부로는 9월 12일 친구들에게 인사도 없이 또 전학을 가버린다.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사부로는 토박이 아이들과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놀다가 가버렸다. 이방인 사부로를 본 날 단박에 아이들은, 저 녀석은 바람의 마타사부로야!로 시작해 느닷없이 떠나 버린 날, 역시 그 녀석, 바람의 마타사부로였어!로 마무리한다. 전 학년이 한 교실에 모여 공부할 정도로 작은 산골 학교에 불뿍 나타난 사부로는 바람임에 틀림없다. 떠나기 싫은 여름과 찾아온 가을이 부딪치는 계절에 나타난.
지인이 여름을 힘들어해, 겨우 두 달 남았어요, 위로랍시고 했지만 일찍 습한 무더위가 와버려 두 달이 쉽지만은 않다.
초여름에 벌써 가을이 그리워 아무 꼬투리나 잡고 알쏭달쏭한 바람 이야기를 한다.
https://youtu.be/AnTG2H8v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