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일기
그분은 평범하게 왔다.
평범했던 지난 일요일은 점심으로 올해 첫 콩국수를 해 먹어 뿌듯하고 기분 좋은 날이었다. 함께 먹은 운도 그런 표정이었고 그런 줄 알았는데, 화장실을 들락거리고 사람이 조용해졌다. 장이 약하고 말수가 원래 적은 사람(점점 늘어나고..)이라 개의치 않았고 해 질 무렵 근처 계곡까지 가서 낮 동안의 더위를 식히고 왔다. 운은 여전히 아주 조금 다운이 된 듯했지만 사람들은 바이오리듬이라는 게 있으니까. 또 평범한 일요일 저녁은 내일을 위해 좀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니까, 그렇게 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에어컨이 꺼져 있다. 약하게 틀어놓지 않으면 못 자는 사람인데, 내가 잠결에 껐나???
욕실에서 면도하는 소리 씻는 소리가 들리고… 바깥일이 있는 사람은 나가야 할 월요일 아침이다. 덩달아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있는데 슬며시 운이 마루에 드러누웠다. 온몸이 두드려 맞은 것처럼 아프다는 것이다. 몸살인가?? 그래, 안 먹던 술을 연이틀 마시더니 몸이 단단히 탈이 낫구먼. 꼭 이렇게 표시를 내요…쯧쯧. 목도 아프다! 뭐!? 목까지??? 순간 여러 명의 동료들과 둘러앉아 두런두런 술이 오가고 말이 오가는 장면이 떠올랐다. 지난주? 2,3일 지났네, 모두 마스크를 벗고서, 우당탕탕 쨍!
코로나, 라는 단어를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떠올렸고, 나가면 연결될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근처 보건소를 9시 땡! 맞춰 갔고, 들어오며 자가 키트를 샀다. 보건소 결과는 내일 나와 접촉한 동료들에게 오늘 알려야 했다. 이제는 이 상황이 익숙해져 크게 동요되진 않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선명한 두 줄이 나오자 올 것이 왔다는 이상한 안도감과 귀찮게 생겼네, 딱 두 가지 마음이 되었다. 수련 위 혼자 남은 개구리는 불안하니까. 지난겨울부터 가까운 사람들은 퐁당퐁당 연못으로 빠지고 있었다. 당연 보건소 결과도 확진이었고 곧 확진자 부부가 될 미래가 펼쳐졌다. 일상이 침 섞는 사이니, 오해 마시라, 단 둘이 사는 식생활이 그렇다는 거다.
님을 기다리며 동구 밖 너머를 자주 기웃하는 젊은 아낙처럼 중년의 아낙도 졸지에 코로나라는 그분이 언제 오시나, 몸을 살피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미 오셨고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머리만 살살 비비는 순한 양의 모습일까, 온몸을 초토화시키는 살인 쯔쯔가무시 모습일까. 웬 쯔쯔가무시냐고? 경험해 봤으니까. 코로나 발생 그 해, 일단 열이 나면 어느 곳에서도 받아주지 않아 생긴 일이다. 고열과 두통, 더 견디기 어려운 오심까지 집에서 온 몸으로 받은 통증은 아이 낳은 일 이후 최고였다. 겨우 큰 병원 임시 진료소에 갔지만 코로나는 아니라면서 처방해 준 약은 통증을 더 극에 달하게 했다. 병명도 모르고 견디다 열이 내려 동네 내과에 갔더니 그 의사는 단박에 쯔쯔가무시 증상이라 했다. 뭐라고요? 말로만 듣던 살인 진드기, 치시율이 높다는?, 지는 아무리 가을이라고 들판에 마구 주저앉지 않았어요! 까만 딱지를 찾아보라 했지만 그런 건 발견되지 않았고(그즈음 가슴팍에 작은 종기 같은 게 올라오는 걸 습윤밴드로 막았는데 그럼 그것이…), 심정적으로 쯔쯔가무시 감염으로 결론 내리며 몸으로 확실하게 새겼다. 설마 그 정도 겠어?
월요일은 약간 긴장감이 있어 그런지 오히려 컨디션이 좋았다. 둘 다 확진이 될 경우를 대비해 먹을 것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먼저 발병한 사람을 거둬 먹이고 하루 종일 집에서 바쁘게 지냈다. 야밤이 되자 마지막 바깥출입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요즘 유일한 낙인 자전거를 끌고 앞 도로로 나갔다. 차도 인적도 드문 그 길을 쌩쌩 달리며 몸을 풀고는 평상시 안 가본 길을 구석구석 오르막 내리막길을 시도하며 배운 이후 최고의 라이딩을 했다. 그리고 시원하고 상쾌한 기분에 취해 그만 코로나가 저만치 물러가고 있다는 과도한 망상까지 하고 말았다. 무증상도 있고 슈퍼 면역자도 있잖아, 혹시 내가 그럴지도 모르잖아??
다음날 피로감에 낮잠이 오고 평상시와 다른 느낌이 약간 들었지만 , 또 다른 님이 가시고 수시로 나타나는 증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음날 자가 키트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고… 그런데 아침부터 목이 잠기기 시작했다. 목주변이 뻑뻑해지면서 단박에 목소리가 변하고 심상치 않았다. 조금 색다른 불편함이다. 드디어 오셨구나! 오셨네…. 모든 병은 밤에 기승을 부리듯 밤이 되자 여러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절대 기준인 쯔쯔가무시보다는 확실히 덜했지만 괴로워지기 시작한 건 마찬가지다. 운은 약을 먹으라고 거듭 권했으나 약에 취해 몽롱해지는 느낌이 썩 달갑지 않다. 전에 없던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지만 너무 익숙한 상황이라 안일한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지나온 세월 동안 얼마나 많은 이런 통증에 시달려 왔던가. 몸살 나고 회복하고, 간격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지 우리는 이런 반복적인 삶의 연속이다. 통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면 그동안 살아온 날들은 왜 그렇게 다 애틋한지, 누군가를 생각하며 눈물짓기도, 연락하고픈 이를 떠올리기도, 극심한 두통이 생각이 글로 나오는 유일한 달란트?를 앗아갈까봐 이렇게 쓰며 확인에 몸부림치기도 한다. 또 불규칙한 잠은 허기를 불러오지만 입맛을 뺏어 결국 눈은 퀭하고 그 사이 머리는 반백이 되어 단박에 나이 먹은 얼굴이 되고 말것이다.
2년 넘게 공포의 대상인 코로나는 여전히 건재하며 대중화되더니 마침내 내 몸에 까지 들어와 똬리를 틀고 있다. 막상 만나고 보니 감기몸살의 형제쯤 되는 것 같은데, 인간의 민낯을 보여주는 발생 경로와 새로운 바이러스라는 데 우린 겁을 먹고 우왕좌왕했었다. 앞으로 이런 식의 새로운 바이러스들을 얼마나 만나게 될까. 또 그 바이러스들을 길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신적 물질적 희생이 따라야 할까. 창백한 푸른 점에 한때 머물렀다고 다른 생명체가 기록해 줄지도 모를 인류의 수순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한 안도감이 든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는 진부한 희망을 적지만, 당장 나는 다음 주 희망을 건다. 다음 주 화요일이면 창밖 길을 걸을 수 있다가 아니라, 자전거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