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를 가려고 갔는데

# 2일째 - 하이델베르크 근교 네카하우젠

by 여름지이

자다가(?) 깨어 폰을 보니 겨우 새벽 3시다. 아직도 이것밖에 안되었나...

시차 때문인지 나쁜 컨디션 때문인지 잠을 토막으로 자고 있다.

계속 잠이 안 와 창밖을 내다보니 이른 새벽인데 버스가 다니고 간간히 사람들 모습이 보인다.

누군가는 이제야 집으로 들어가는 것 같고 누군가는 벌써 집을 나서는 것 같다.

땡땡! 지금이라도 트램이 지나갈 것만 같은 철길이 바로 밑에 있는 걸 보니 내가 유럽 땅에 왔긴 왔구나!

옆에 아들은 잘도 잔다. 다행이다. 다시 잠을 청해 본다.


어쨌든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녘에 본 그 트램길을 지나는 트램을 타고 다시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갔다.

오전에 잠깐 인근 명소를 둘러보고 하이델베르크로 들어갈 참이다. 중앙역 부근 분위기가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공간에 사람이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구나. 어제는 휴일이라 한산했다면 오늘은 날씨까지 가을처럼 청명해 거리가 훨씬 활기차 보였다. 엉덩이가 엄청 큰 여자가 코에 피어싱을 하고 입에 담배를 물고 이어폰을 끼고 누군가랑 열심히 대화하는 모습이 자유로움 자체로 느껴진다는 건, 분명 어제 마음은 아니다.


캐리어를 덜덜 끌고 뢰머광장, 괴테하우스 두 곳을 돌아보았는데 왠지 영혼 없는 방문이었다는 느낌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장소나 북적거리는 곳은 역시나 매력 없다는 걸 여러 번 느꼈지만 '그래도'하는 마음이 또 그런 곳으로 이끈다. 만약 독일 문학기행이라는 테마를 갖고 괴테하우스를 갔다면 아마 훨씬 다르게 다가왔을 것이다. 근데 지금 하고 있는 여행은 테마가 없다.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여행이 끝난 후 아마 테마가 정해질 듯하다. 그래도 당시 귀족 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괴테의 생가는 내 가 추종? 하는 유럽 앤틱 세계 그 자체였고 프랑크푸르트가 괴테의 도시임은 확실히 각인된 것 같다.

중앙역으로 다시 돌아와 플릭스 버스라는 걸 타고 하이델베르크로 갔다. 부산에서 경주나 울산 정도로 온 느낌.

정해놓은 에어비앤비 집을 찾기 위해 아들은 구글맵을 돌렸고 건너편 트램 정거장에서 맵이 가르쳐주는 트램을 타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시골길을 달렸다. 가만히 앉아 보이는 것만 보고 있는데도 영혼이 몽골몽골 해지는 기분이다. 묵을 집이 어떤 곳일까 설레며 내렸는데 아들이 잘못 내린 것 같다며 당황해한다. 어쩌나! 다시 검색하더니 여기서 마을버스를 한번 더 타야 한다며 잔돈 바꾸러 가게를 찾아 어디론가 뛰어갔다. 혼자가 되었는데도 두려움보다는 묘한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마침 근처에 버스가 보여 다가갔더니 시간이 멀었는지 문이 안 열려 있다. 덩그러니 한쪽으로 비켜서서 낯 선 마을을 눈에 담아 본다. 문득, 어릴 때 혼자 걸었던 대낮의 시골 신작로 길과 그때 주위를 에워쌌던 공기? 분위기가 떠올랐다. 너무 한낮의 햇살이 주는 나리함, 고요함, 쓸쓸함 때문일까. 낯설고도 익숙한 마을이다.


한참을 기다리니 동네 사람들이 한 두 명 모여들었다. 버스가 떠날 시간인가 보다. 세계 어느 곳에서나 재잘거리는 소녀들, 중년 부인, 할아버지... 몇 명 안 되는데 구성원이 다양하다. 그들 사이 아들과 나. 아무도 우리에게 관심 가지지 않았고 각자의 상황과 생각에 빠져 있을 뿐이다. 굳게 닫혀 있던 버스 문이 열리고, 드디어 출발!


조금 이동하니 우리가 머무를 고즈넉한 마을이 나타났다. 나리 했던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듯, 세상에, 호수? 강? 까지 곁에 둔 마을이라니... 버스에서 내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곳곳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보랏빛 라벤다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고, 마침 해 질 무렵 종소리까지 울려 퍼졌다. 하이델베르크 중심에서 좀 벗어나고 침대가 트윈이라 선택했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환영을 하다니, 도대체 여긴?


집도 기대 이상이었다. 특별한 건 이 집을 운영하는 부부가 직접 가꾼 사과와 지역 농산물 가게가 건물 1층에 있고 가공 공장도 옆 건물이라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짐을 풀고 당장 내려가 보니 갖가지 과일, 채소, 가공식품이 작은 공간에 아기자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판매는 사람도 독일인 치고는 자그마한 체구에 친근한 이미지가, 자주 가는 우리 동네 생협 언니랑 비슷해 짧은 영어 실력으로 몇 마디 나누며 졸아있던 마음을 좀 풀어헤쳐 보았다. 검은 자두, 수박, 토마토, 계란을 사 들고 올라와 한국서 챙겨 온 음식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입에 착 감기는 우리 거와는 분명 다른 맛이었지만 이 곳 햇살과 땅, 독일 와 처음으로 느낀 푸근함의 맛이라 생각하니 절로 입과 뇌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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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도 해가 중천이라 산책을 나갔다. 가게들은 문을 다 닫았고 기웃거린 것들 중에 마을에 한 개뿐인 빵집이 눈에 들어왔다. 아침 6시에 문을 연다니 내일 일찍 여기서 갓 구운 빵을 사 와 아침으로 먹어야겠다. 독일인도, 독일 여행자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아침에 갓 구운 빵이 독일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라 하지 않았던가! 벌써 군침이 돈다.

참! 이 마을 이름은 neckar강가에 있다고 neckarhausen 이란다. 호수라고 생각했던 게 네카어 강이었다.

지도를 보니 프랑크푸르트 남쪽 만하임이라는 도시에서 갈라지는 라인강의 지류 정도 되는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를 생각하고 왔는데 차를 잘못 내리기도 뜻밖에 네카하우젠이 쑥 들어오기도 하니 여행이 슬슬 시작되는 기분이다. 그냥 내일 하루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여기서 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