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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Nov 22. 2023

들깨알 같은 이야기

텃밭을 마무리하며

4월에 시작된 텃밭이 마감되었다.

문자가 오기를 20일까지 모두 배추를 뽑으라 했다. 지난 금요일(17일) 오전, 배추 상태를 보러 갔으나 그날 수확할 마음은 없었다. 속이 조금 더 차기를 바라 일요일까지 두기로 마음먹었으니까. 한 움큼으로도 뽑을 수 있는 배추들을 감상하듯 바라만 보고 있으니 관리인 아저씨가 슬그머니 와 한소리 했다. 주변은 사람이 있는 곳이라면 수확의 현장이다. 얼마 안 되니 포대 하나 들고 와서 그냥 오늘 뽑아가라고, 저녁에 많이 추워 얼지도 모른다고. 배추는 얼었다 녹았다해야 달아지는 거 아닌가, 또 어디서 근자감이 올라왔으나, 알겠습니다 미소로 대답했다. 미소가 걱정으로 바뀐 건 단 몇 시간 후였다. 늦은 오후가 되자 바람이 불고 정말 기온이 심하게 떨어져 움츠려든 마음은 허겁지겁 텃밭으로 달려가 단박에 배추들을 뽑아 들게 했다. 어스름녘 바람 부는 가을 들판에는 배추 수확에 서툰 두 사람의 수군거림만이 울렸고, 잠시 후 그들은 뭐가 그리 급한지 널따란 공공텃밭을 바삐 빠져나갔다.

다음날 온 누리에 다시 햇살이 퍼지자 배추의 가보지 않은 길이 아쉬웠다. 얼었다 녹았다 하는 겨울배추의 시간을 단 하루도 지켜주지 못한 조바심과 어차피 허락되지 않는 공공텃밭 사용 기간이.


감상은 집어치우고 이젠 현실만 남았다. 배추가 있으니 절이고 씻고 김장을 해야 했다. 양이 적어 다행이기도, 고깟 저 정도로 귀찮은 일을 벌여야 하나 하는 후회가 올라오기도 했지만 텃밭 농사의 진정한 마무리를 위해서는 자급자족 김장 흉내를 내보아야 했다.  그럭저럭 집안에 있는 도구들을 꺼내어 절이고 씻고 양념을 만들어 13L 김치통을 완성했다. 마침내 텃밭 사용기간과 얼추 맞게 작물 소비도 마무리된 것이다. 아니지, 들깨를 떨었으면 일 년 내 먹을 수 있는 것처럼 김치는 저장식품인지라 겨울을 넘어 봄에도 식탁에 올라 텃밭의 추억을 상기시킬 것이다. 사실 들깨는 꼬투리를 많이 맺었었지만 엄두가 나질 않아 수확을 포기한 유일한 작물이다. 마음껏 깻단을 떨고 불고 까부는 공간이 필요하다.


겨우 5평 텃밭을 하고는 밭에 떨어진 들깨를 줍는듯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들깨알은 너무도 작아 애써 줍는 자에게만 보이는, 아무나에게는 보이지 쉽지 않다. 적었고, 적고 있는 텃밭 이야기가 그렇다. 특별할 거 없어 관심을 가지고 돌본이에게만 말이 되는 들깨알 크기만큼의 이야기다.

텃밭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시골에서 지랐고 대단한 농사꾼의 자식은 아니었어도 밭일에 몰두해야만 살아지는 엄마의 딸이었다. 엄마가 밭일하는 동안 애기였던 나는 뱀이 올까 봐 바구니에 담겨있었다는 이야기를 살면서 내 정체성의 이미지로 간주하고 있었다. 이미 그때부터 호미소리, 흙냄새 풀냄새가 온 감각에 새겨진 거라 믿었다. 밭고랑에 앉을 때면 풀밭 바구니 속 아기가 된다. 온몸을 감싸는 땅과 햇볕의 뜻뜻한 기운이 나를 보살폈다.


동화 <어진이의 농장일기> 에는 다양한 텃밭 이웃들이 나온다. 어른들을 이어주던 아이들이 다 커버려 실제 이웃으로 나아가진 못했지만 몇 사람은 적을 수 있다.

38번 왼편에 있던 70살 할머니의 밭은 공공텃밭의 모델로 삼아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푸짐하고 풍성했다. 꼬박꼬박 인사를 하고 그나마 얘기를 좀 나누어 우리 텃밭에 없는 채소들을 얻어먹었고, 올해 자전거를 배웠다는 자랑을 듬뿍 들어 주었다. 노인의 젊음을 보았다.

가꾸는 모습은 못 봤지만 상추 따는 뒷모습이 들어온 바로 옆 젊은 남자의 밭. 알고 보니 애기아빠였던, 그의 어느 토요일 모습이 인상적이다. 겨우 백일이나 됐을까 하는 아기를 안고 나온 앳된 아내를 세워놓고 어찌나 가꾼 채소들을 의기양양하게 소개하던지. 또 아내는 놀란 토끼눈이 되어 감탄하고.. 귀여운 젊은 부부였다. 여름이 되자 밭에 발을 끊어 노란색 방울토마토가 영글고 터져도 따가지 않더니, 산책길에서 조깅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 두 번 본 외간 남자를 알아보나 싶겠지만, 돋보기 초점 맞추듯 서서히 기억나는 걸 어쩌겠나.

감자남이라 부르고 싶은 중년남자도 있었다. 상추가 푸릇푸릇 해진 어느 날, 대각선에 사람이 있어 활기차게 인사를 했는데, 이 아저씨 약간의 오해가 있었나 보다. 잠시 후 머뭇거리다 건너오더니, 텃밭농사 개론 같은 걸 설파하기 시작했다. 감사하다는 인사로 마무리는 했지만, 이후로 인사하기가 머쓱했다. 그리고 인사하는 게 민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자 키우기에 진심이라 어디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감자고랑에 푹 파묻혀 있었다. 이분 감자 캐간 이후로 두문불출, 텃밭은 풀밭이 되었다.

관리인 아저씨를 빼놓을 수 없지. 어느 공직에서 퇴직했다는데, 지인들에게 텃밭을 사바사바 분양했는지 가끔 떠들썩하게 모임 분위기를 만들어 고개를 들게 했다. 뭘 물어보면 무조건 '탄소동화작용'으로 퉁치던 썰렁이 아저씨이나 공공텃밭 우렁아저씨 역할에 충실했던 고마운 분이다.

거의 끝무렵에 딱 한번 대화를 나눈 방아꽃여인이라 마음대로 이름을 붙인 사람도 있다. 애정하던 방아꽃을 남몰래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어느 중년 여인이 말을 걸어왔다. 이 꽃 이름은 무엇이며 좀 꺾어가도 되냐고? 뼛속까지 갱상도 사람 아니다. 물론이죠, 마음껏 꺾어가셔요!!! 작물만큼 꽃인 이에게 그 사람은 텃밭 선물처럼 피날레처럼 그렇게 나타났다.


너무 작아 수확하기조차 꺼려졌던 들깨알 같은 이야기가 맞을 것이다. 쓰는 나조차 돋보기를 들이댄 기분이니까. 쓰지 않았다면 그저 그랬던 일상으로 사라졌을. 텃밭 하니까 몸도 좋아지고 채소값도 아끼고 좋았어, 정도로 기억하고 말. 봄의 어린 채소들, 여름 햇살로 뜨끈했던 토마토, 순진했던 가을 채소꽃들, 마지막날 듬뿍 맞은 칼바람, 그리고 각자 사정이 있었을 텃밭 이웃들을 기억하려 한다. 병들고 외로울지 모르는 미래를 향해 희망같은 걸 품기위해.


첫 쌈채소를 심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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