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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Feb 23. 2024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1770~1843)

괴테할머니tv에서


노학자가 들려준 낭랑한 시낭송은 귀 기울이기에 알맞았다. 썸네일 제목이 먼저 들어온 ‘횔덜린의 네카강변’ 편 이었다. 네카어강변이라면 내가 두 번이나 가본 곳 아닌가. 관문인 프랑크푸르트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인 라덴부르크와 네카하우젠을 양쪽에 끼고 있는 강, 나의 어설픈 독일여행기 속에 등장한다. 독일 남서부 바덴뷔르템베르크주로 하이델베르크, 슈투트가르트같은 이름난 도시들이 가깝지만, 또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역시 네카어 강변의 오래된 작은 도시, 마을들이다.

시인 횔덜린이 인생 후반부에 광인으로 생을 마감한  ‘튀빙겐’도 네카강변의 오래된 대학 도시였다. 괴테할머니 전영애 님이 학생 때 우연히 읽게 된 횔덜린의 시 한 편은 그녀의 첫 독일행을 튀빙겐으로 이끈다. 네카강변의 어느 목수가 광인 횔덜린을 거두어 주었다는데, 방 한 칸에서 36년 동안 살았던 집이 지금 횔덜린 기념관이 되었다. 미래에 유품이라곤 하나도 없을 집에서 가끔 정신이 돌아왔을 때 쓴 시들이 절창(아주 뛰어나게 잘 지은 시문)이었다니, 잊혔다가 사후 백 년이 지나 마침내 인정받은 이유일 것이다.

들려준 시는 불행했던 삶과 달리 인간 스승의 지혜의 말, 혜안으로 다가온다.


인생행로

     - 프리드리히 횔덜린 -

보다 큰 것을 너 또한 뜻하였다, 그러나 사랑이

우리 모두를 꺾어 내리고, 고통이 더욱 세차게 굽혀 놓는다.

그렇지만 우리 화살은 헛되이

온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위로 가든 아래로 가든! 성스러운 밤에,

말없는 자연이 이루어지는 낮을 생각하는 그때

지배하지 않는가, 가장 가파른 명부에서도

한 가닥 바름이, 옳음이 아직도 지배하지 않는가?


그것을 나는 경험하였다. 그럴 것이, 인간 스승처럼

그대들 천상의 힘이여, 그대들 만물을 유지하는 이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알기로, 조심스럽게

평탄한 길로 인도하는 법이 결코 없었다.


모든 것을 시험해 보라, 천상의 이들은 말한다,

실하게 자양분을 얻어서, 모든 것에 대한 감사를 배우라

그리고 자유를 이해하라

불쑥 떠나는 자유를, 어디로든 원하는 곳으로.


변하지 않는 인생의 진실에 관한 것으로 읽었지만, 오늘 아침 다시 /사랑이 우리 모두를 꺾어 내렸다/ 거부할 수 없는 말없는 자연이 이루어지는 낮/이 다르게 들어온 건, 지난밤 꿈에까지 따라온 걱정하고 고민했던 일의 근원에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사랑과 고통은 동전의 양면이기에 보다 큰 것을 뜻한 건 아니어도 나아가는 길엔 꺾고 굽혀야 할 일이 있다. 천상의 힘으로 꺾이고 굽혀지지 않는다면 스스로 꺾고 굽혀야 한다. 뜻한 뜻을 얻을수록 어인일인지 자유는 점점 줄어든다. 성취의 다른 면은 불안과 혼란이니, 평탄하지 않은 길에서 감사가 저절로 될 때 불쑥 떠나는 자유는 찾아온다. 저마다의 손금만큼 달라야 된다는 행복처럼 자유도 그럴 것이다.


인생의 반을 광인으로 산 시인의 자유는 무엇이었을까. 방 한 칸의 자유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때가 아니었는지, 그래서 돌아왔을 때 먼 여행에서 돌아온 것처럼 딛고선 그곳이 선명해져 시가 터져 나온건 아닌지… 그때나 지금이나 네카어 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어쩌면 시인이 창밖으로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흐드러지게 늘어진 수양버들과 노을을 벗삼아.


작년 이맘때 네카어강의 노을과 매화꽃류
네카어강의 화물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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