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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영 Jul 02. 2020

바보같은 사랑과 막돼먹은 사랑



모내기 끝난 논엔 벼가 파릇파릇 자라고 동산의 녹음이 짙다 못해 거뭇거뭇 해질 쯤이면 온 동네에 뻐꾸기 소리 울려 퍼진다. 이 무렵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는 잠깐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농촌의 한낮이 주는 나리함과 적막감... 한가로움이었다. 적어도 어린 시절 6월의 기억은 그렇다.


요즘 산길을 가다가 유난히 가까이서 들려오는 뻐꾸기 소리를 들으면 좀 다르게 다가온다.

'쟤가 또 누구 둥지에 알을 갖다 놓으려고 저렇게 울어 쌌나... ㅉㅉ'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다른 새로 하여금 자기 알을 부화시키고 기르게 하는 '탁란'을 알고 나서부터다. 주로 조류에서 나타나는 습성인데 뻐꾸기가 대표적인 새이다. 자연다큐에서 그의 생태를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갓 부화한 털도 나지 않은 거무티티한 뻐꾸기 새끼가 둥지 주인 붉은 오목눈이 새끼를 바깥으로 죽기 살기로, 게다가 눈을 희멀겋게 감은 채 평평한 등으로 밀어내는 모습이라니! 꼭 공포영화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무슨 이유로 뻐꾸기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또 부화한 새끼(욕 아님)는 뭘 알아서 물에 빠진 사람 건져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으로, 아니 보따리보다 더한 목숨을 내놓으라는 듯  원주인을 저렇게 필사적으로 둥지 밖으로 밀어낸단 말인가! 또 오목눈이 엄마새는 눈이 있는데 왜 지 새끼를 구분 못한단 말인가! 자기보다 몇 배나 되는 뻐꾸기 새끼에게 몸 바쳐 먹이를 연신 나르는 꼴이라니...


모성 본능이 일으키는 호기심에 좀 더 알아봤더니, 완전히 납득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이유는 있었다.

멀리 아프리카에서 유럽이나 아시아로 이동하는 뻐꾸기는 늦게 와서 일찍 떠나는 새란다. 그런데도 여러 번 알을 낳기 때문에 부화시킬 시간이 모자라 탁란을 시킨다는... 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번식 본능은 새끼를 더 많이 생존시키는 쪽으로 진화되어야 하지 않나??? 맞다, 그래서 계속 관심을 가지고 관련 다큐를 봤더니

아무렴 남의 둥지에 넣은 알이 부화될 확률이 높을까, 한 번이라도 어미가 직접 부화시키는 게 생존율이 높을까.

알이 부화해서 제대로 자랄 확률이 오래전부터, 남의 둥지 그리고 어미가 좋아하는 송충이류 먹이보다 다른 새가 먹여주는 다양한 벌레가 오히려 새끼를 건강하게 키워, 결론적으로 탁란이 뻐꾸기 생존에 유리한 방법으로 진화한 것이라고 학자들은 가설을 세웠다 한다.


이런 생태가 붉은 오목눈이나 뻐꾸기에게만 있는 게 아니었다.

멀리 아프리카 탕가니카 호수로 가보자. 세계에서 바이칼 다음으로 깊고 오래된 호수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어항 물고기로 알려진 '시클리드'라는 조그만 물고기의 고향이다. 이 물고기는 알을 입안에 넣고 키우는 희한한 습성이 있다. 시클리드가 알을 낳아 입에 물 때 물고기계의 뻐꾸기 '시노돈티스'라는 메기 종류의 물고기가 나타난다. 뻔뻔스럽게 시클리드 앞에서 시노돈티스 암놈이 알을 낳으면 수놈이 수정시켜 놓고 도망간다.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잘생기고 탐스러운 그 알을 시클리드는 홀린 듯이 마구마구 삼키고, 입안에서 먼저 부화한 메기 새끼는 늦게 부화한 시클리드 새끼를 잡아먹으며 산다....


붉은 오목눈이와 시클리드, 뻐꾸기와 시노돈티스!

바보 같은 사랑과 막돼먹은 사랑으로 분류하고 싶지만


이들의 생태를 중견작가 이순원은 <오목눈이의 사랑>이라는 소설에서 생물학적인 고증과 지리, 역사, 민담 등을 잘 버무려 모성과 자연의 조화란 관점으로 이야기를 풀었다. 여기서 모성은 남의 알을 품고 말았던 붉은 오목눈이의 관점에서, 이기적이지도 핏줄 중심도 아닌 다른 생명체를 기르면서  생기는 사랑이었다. 그러해서 뻐꾸기도 오목눈이도 공존할 수 있었다.


자연의 순리, 조화는 결국 생명체들의 공존을 위한 장치였다! 생태계에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는 듯하다. 진정 스스로 그러할 뿐.




자식을 낳고 키워본 어미 입장에서 뻐꾸기의 탁란이 늘 의문이었는데 이 글을 쓰며 좀 정리가 된 듯하다. 발행을 해놓고 더 생각이 일어 여러 번 고쳤다.

그래도 요즘 사람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자연을 거스르는 일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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