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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21. 2017

트라우마

하얀 눈을 보면 마음이 들뜬다.


Chefchaouen을 떠나기 전날 밤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혹시나 하면서 밖으로 나왔다. Chefchaouen을 내려다보는 봉우리들만 눈에 덮였다. 밤사이 하얗게 변한 봉우리들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왜 눈을 보면 마음이 들뜨는 것일까?"

눈은 모든 것을 하얗게 덮어버린다. 상처에 밴드를 붙이면 상처가 보이지 않듯이, 모든 보기 불편한 것들을 덮어버린다. 그것도 순백의 색깔로...

마음에 상처가 있거나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심리치료를 받는다. 심리치료의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미술심리치료는 치료사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린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양한 상징적 표현을 통해 가족과 집을 그린다고 한다. 그림에 그려진 상징적 표현을 이해함으로써 치료사는 아이가 갖고 있는 상처나 문제를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와 그림에 대해 대화를 하다 보면 문제가 좀 더 구체화된다고 한다. 치료의 핵심은 치료사가 하는 것이 아니고 그림을 그린 아이가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극복해 나가는 것이다.

누구나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애써 외면하거나 모른 체하고 있을 뿐이다. 그림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드러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신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하얀 도화지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림을 해석하는 것보다 글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쉽다. 글은 일목요연해야 하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해야 한다. 그래야 잘 쓴 글이다. 그래야 논술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 글을 꼭 남 보라고 쓰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꼭 남 보라고 그리지 않듯이... 미술치료사인 아내와 나와 가장 가까운(?) 딸은 대부분의 내 글이 황당하단다. 제목, 서두, 중간, 마지막 문단이 전부 따로따로 란다. 일목요연하지 않단다. 아내와 딸의 관점에서 나의 정신세계는 종잡을 수 없는 것이다. 난 내 방어기제가 아직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숨기고 싶은 것이 많은 것이다.

전에 그린 그림을 다시 보았을 때처럼 전에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면 야릇한 감정이 느껴진다. 명문이네 하며 나르시시즘에 빠지기도 하고 내 치부를 세상에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창피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갖고 있는 트라우마가 점점 보이기 시작한다.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 긴 세월을 살면서 어떻게 아무런 트라우마 없이 속 편한 인생을 살 수 있었겠는가? 물론 트라우마 강도의 객관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이 겪은 트라우마가 본인에겐 가장 심각한 것이다.

트라우마는 정신적인 상처와 흉터로 남을 수 있다. 결국 모든 사람이 경중의 정신적인 장애를 갖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집착, 망상, 편집증, 피해의식, 자기애 등등...

시간이 약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치유되지 않고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이다. 세월호에서 자식을 잃은 부모가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치료는 상처와 흉터를 확실히 인식하는 것이 시작이다. 그리고 이 모든 문제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를 자신이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내 의식을 깨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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