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희생하며 미래를 기다린다.
자유여행을 다니다 보면 무엇인가를 관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여기를 언제 다시 오겠어. 왔을 때 다 봐야지." 하는 생각 말이다. 어렵게 시간 내고 돈 들이고 왔는데 어떻게 숙소에서 뒹굴 수 있냐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표만 덜렁 사고 떠나온 자유여행이라도 귀국 전까지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은 여행 초기에는 은근히 불안하다. 패키지여행의 힘든 일정이 부담스러워 소위 자유여행을 하면서도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불안한 것이다.
미래는 정해지지 않는다. 정하고 싶을 뿐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정해지지 않은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현재만 존재한다. 그러나 미래를 정하느라 바빠서 현재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지나간다.
마시멜로 효과란 것이 있다. 스탠퍼드대 어느 교수가 4살 유치원 아이들에게 실험을 했다.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마시멜로 하나를 손에 들고 보여주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달라고 손을 내민다. 그때 이렇게 얘기한다. "15분을 꾹 참으면 두 개를 줄텐데, 지금 이 하나를 줄까?" 15분을 참은 아이와 참지 못한 아이를 구분하여 15년 뒤 미국의 대학 수학능력시험인 SAT 점수를 비교하였다. 그 어린 나이에 두 개를 얻기 위해 15분을 참았던 아이들의 점수가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의 이득을 위해 현재를 참을 줄 아는 사람이 성공한다는 과학적인 근거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를 희생하며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래를 기다린다.
이르쿠츠크의 카잔 성당에 갔다. 이 동네에서는 가장 화려한 성당이다. 성당의 외부는 일 년생 팬지꽃으로 뒤덮여 있다. 몇 달의 여름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모자와 선글라스를 벗고 성당 안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높은 돔 천장과 십자가와 많은 성인들의 초상화와 조각들이 보인다. 성인이란 죽어서 신이 된 사람이다. 사람들이 켜놓은 양초들로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태양빛이 흔들린다. 성호를 긋는 남녀들로 붐빈다. 단상이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성호를 긋고 초상화에 입 맞추는 사람들이 보인다. 모두가 기원하고 있다. 자신의 미래를 아니면 신이 되게 해 달라고...
결정되지 않은 미래가 궁금하다. 그래서 성당에 온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가 걱정된다. 그래서 양초 불을 켜고 성호를 긋고 성인들의 초상화에 입 맞추며 기원하는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의 시간을 바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이천 년 동안 엄청난 성당과 교회가 생겨났다. 지금 이 시간에도 십자가를 제일 높은 곳에 올린 수많은 성당과 교회가 지어지고 있다. 미래를 걱정하는 수많은 인간들을 위하여, 수많은 인간들에 의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