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드니 꽃이 좋더라구. 젊을 땐 몰랐는데...
페친 중에 후배가 있다. 두살인가 세살 밑이다. 인스타그램에 자주 사진을 올린다. 오직 꽃 사진만...
좋아요를 누르다 댓글을 달았다.
“나이 드니 꽃이 좋더라구. 젊을 땐 몰랐는데...”
살아 있다는 것이 사랑스럽다. 주변의 모든 물건들이 사랑스럽다. 특히 꽃은 곧 시들 것을 알기에 더욱 사랑스럽다. 지금 한창 핀 꽃의 절정의 시간을 내가 느꼈다는 것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꽃이 내 앞에서 활짝 피었다는 것 때문에 꽃이 너무 사랑스럽다. 이 순간을 느끼고 즐겨야 한다는 의무감마저 생기는 것 같다. 나이가 드니...
사랑은 조건부 사랑과 조건 없는 사랑으로 나눌 수 있다고 누가 그랬다. 거의 모든 결혼은 조건부 사랑의 결과물일지 모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평생 꿈꾼다.
목숨까지 주고 싶은 사랑을 하고 싶다는 친구를 만났다. 국민학교를 함께 다녔지만 대학교 1학년 때 문무대에서 스쳐 지나가고 최근에 연락이 닿아 만난 외과의사다. 갑자기 핸드폰을 꺼내더니 문정희 시인의 ‘목숨의 노래’ 를 낭송한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단다. 2차 노래방에서 나는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꺼야’ 를 불렀다. 수백번도 더 부른 노래다. ‘아무도 모르게... 너 만을 위하여...’ 내가 하고픈 사랑도 내 친구의 목숨을 주고픈 사랑도 조건 없는 사랑일 것 같다.
이즈음 꽃을 보며, 내가 느끼는 사랑도 조건 없는 사랑이다!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주변의 물건들 특히 꽃 처럼 시간이 유한한 것에 대한 사랑을 낳는 것이 아닐까?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에 시사주간지 타임지를 겨드랑이에 끼고 종로2가 영어학원을 한달 다녔다. 타임지를 독해하는 반이었다. 텍사스의 어느 교도소에서 사형수의 사형집행과정을 서술한 기사였다. 기사가 된 이유는 사형집행이 아주 오랫만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형수는 많지만 대부분의 주지사들이 사형집행 결재를 미룬단다.
사형 집행하기 직전에 사형수에게 미니어처 병의 술을 제공했다. 그 술이 ‘Barcardi’ 였다. Barcardi 가 유명한 럼주이고 럼주가 위스키만큼 독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그 Barcardi 의 맛이 어땠을까 무척 궁금했다. 그 궁금함을 40년째 간직하고 있다.
미니어처 술병을 한번에 털어 넣고 바로 죽었으니 알 길이 없다. 솔직히 우리 모두 사형수 아닌가. 언제 집행될지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