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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Dec 18. 2018

유토피아

그리스어로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는 곳’을 뜻한다.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유토피아는 근원적으로 꿈일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의 소설에 나오는 문장이다. 유대인(유대인은 천재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다)인 알랭 드 보통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을 수석졸업했단다. 세계적인 명문대를 수석졸업했다니 알랭 드 보통은 천재이다. 그래서 그의 글은 읽기 어렵다. 아주 집중해서 읽어도 인용하는 많은 것들이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공학을 전공한 나한테는 아주 난해하다. 듣도 보도 못한 이야기와 사람이 워낙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도 재미있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소설 ‘우리는 사랑일까’에 빠져 있다. 너무 재미있어서 아들에게 카톡 했다.

아빠: 우석아 알랭 드 보통의 ‘우리는 사랑일까’ 사서 꼭 읽어봐. 네가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나는 도서관에서 빌려서 보고 읽는데 책이 너무 낡아서 너한테까지 못 빌려주겠다. 네가 사면 내가 너한테 빌려서 다시 읽게. 내가 결혼하기 전에 이 책을 읽었으면 네가 나오진 않았을 것 같아.ㅎㅎ
아들: 중고서점에 있으면 살께.

웬 중고책! 60 평생에 그렇게 많은 책을 샀지만 난 중고책을 산 기억이 없다. 책을 사면 언젠가 읽을 것이고 읽고 나면 내가 더 성장하고 발전할 것이란 믿음에 책을 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어려운 책일수록 내가 이해 못하는 심오한 내용이 있을 거란 착각이 있다. 이해하기 어렵다면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어렵지만 어려운 곳을 슬쩍 건너뛰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렵지 않은 많은 곳에 유대인 천재의 독특한 관점이 나를 사로잡는다. 앨리스와 에릭의 사랑과 이별이 줄거리인데 남자인 알랭 드 보통이 어떻게 여자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아는지 모르겠다. 알랭 드 보통의 연애사와 결혼사가 궁금하다.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가족 카톡방에서 딸과 아들의 대화에서다.

딸: 우석아 너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책 샀다했지. 이번 주말에 갖고 와. 나 보게.
아들: ㅇㅇ
아빠: 그게 모냐? 제목이 쿨하네.
딸: 우석이 선배가 쓴 책 이래. 홍대 미대 나온.
아빠: 그래? 난 도서관에 있나 찾아봐야지.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를 읽다 “진짜 하고 싶은 일과 사랑이 정말 많이 닮았다.”는 구절에 빵 터졌다. 아직도 노래방 내 18번이 녹색지대의 ‘사랑을 할 거야' 란 것은 진짜 사랑을 아직도 못해보았단 얘기다. 마찬가지로 진짜 하고 싶은 일도 아직 못 찾았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일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불가능한 것을 열심히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가능하다고 믿고 찾는 것인지 모르겠다. 유토피아처럼.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는 ‘야매 득도 에세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득도한 저자는 책 제일 뒤에 참고문헌 5권을 나열했다. 참고문헌은 보통 논문에나 있는 것인데 이런 책에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5권의 참고문헌 중에 두 권은 일본 만화가의 작품이고 두 권이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다. 그래서 읽기 시작했다. 지금 보니 참고의 수준이 아니라 득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책이다.

정작 대학 다닐 때는 책은 일도 안 보던 아들이 서른이 되어 책을 읽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직장생활 4년 차가 갑갑한 것이다. 조직이 근원적으로 갖는 폭력성에 굴복하기 싫은 것이다. ‘자유인’이 되고 싶은데 마땅한 길을 못 찾고 있는 것이다. 변화가 필요한데 어찌할 줄 모르기에 드디어 책을 읽는 것이다. 혹시 길이 생길까 하여...

성장한 아들 딸과 책을 돌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대화거리도 생긴다. 사실 솔직한 마음은 아들 딸과 같은 세대를 살고 싶은 것이다. 잔소리나 하는 꼰대가 아니고 같이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다. 아들의 길을 찾다가 혹시라도 내 길도 찾으면 대박이다.

부모 자식 간의 친구 같은 대화는 유토피아처럼 원래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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