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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23. 2019

할아버지가 되었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딸이 아들을 낳았다. 어제 금요일 저녁에.


너무 나이 들기 전에 애를 낳아야 한다며 결혼한 딸이 드디어 애를 낳았다. 예정일보다 3일 먼저 양수가 터지고 5시간 이상의 진통 끝에 자연 분만했다. 외손자가 생겼다는 기쁨보다 내 딸이 힘들게 고생했다는 것이 더 마음 쓰인다. 그러나 출산의 고통이 어찌 산모에게만 있을까 한다. 그 좁은 산도를 나오기 위해 뽀야(아직 이름을 정하지 못해 부른 태명) 또한 얼마나 힘들었을까마는.


성인이 되면 결혼하고 애를 낳는 것이 당연하던 시대가 지나가 버렸다. 힘든 세상을 혼자 살아 내기도 벅차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지 않는다.(아들 우석이도 돈이 없어 결혼 못하겠다며 내게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 결혼한 많은 부부들은 양육의 부담으로 애 낳기를 주저한다.


내 딸이 태어나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1988년 1월 23일은 새벽부터 눈발이 날렸다. 예정일이 이주가 지나 전날 아내를 입원시키고 나는 집에 가서 잤다. 아침 일찍 병원에 갔음에도 아내가 침대째 분만실로 실려가는 것을 도착하자마자 병동 유리문으로 보았다. 그리고 30분 뒤 나는 대기실에서 딸의 아빠가 되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어느새 내 책임은 끝나고 딸과 사위의 엄청난 책임이 생겼다.


양수가 터진 딸을 사위가 병원에 데려가고 딸의 진통을 계속 함께 했다. 분만실에도 함께 하고 심지어 탯줄을 가위로 잘랐단다. (탯줄을 자르는 것은 아이의 일생을 책임지겠다는 일종의 의식이란 생각이 든다) 분만의 고통과 탄생의 경이의 시간을 함께한 것이다. 저녁도 못 먹고.


자기 자식은 책임이 있어 마냥 좋을 수 없지만 손자 손녀는 책임이 없어 마냥 좋다고 어느 선배 할아버지가 그랬다. 아직은 좋은 줄 모르겠고 온 몸이 퉁퉁 부은 딸의 몰골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리고 내 딸이 엄마가 되었다는 것이 대견할 뿐이다. 이젠 나도 외손자가 있는 어엿한 할아버지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고, 새로운 경험의 시작이다. 인생이란 큰 그릇에 담을 좋은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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