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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Aug 17. 2020

노후대비 8

행복의 정의는 ‘생존의 기회’



저녁 9시가 되면(어떤 사람들은 8시에) 습관적으로 TV를 켠다. 그러면 한 시간이 훅 지나간다.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뉴스에 눈과 귀가 시달리는 동안 머릿속 뇌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자기 전 오늘 9시 뉴스에서 무엇을 보고 들었나 복기해 본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귀중한 내 인생의 한 시간을 낭비하였다는 죄책감에 내일부터 뉴스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한다.

이렇게 시간을 습관적으로 소비하면 불안하다. 생산적이고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것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DNA에 각인된 것이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들은 항상 먹을 것을 걱정했다. 사냥을 하든 채집을 하든 식량을 그날그날 해결하며 살던 인간들은 항상 생존을 걱정했다. 딱 150 음절로 이루어진 주기도문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하루에 세 번이나 하는 식전 기도에도 눈 앞의 음식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동물인 인간들은 매일 일용할 양식을 걱정했다.

인스타나 페북의 사진들은 행복한 순간의 사진들이다.

가장 많은(빈도가 높은) 행복한 순간은 음식 사진이다. 간혹 좋은 경치(금강산도 식후경!)도 있지만...

맛있는(있어 보이는) 음식을 보면 우리는 행복하다. 그래서 행복을 느끼게 해 준 음식을 사진 찍어 바로 SNS에 올린다. 자신의 행복을 자랑하고 싶은 것이다. 이 행복을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인정받고 못 받고는 행복의 지속시간과 크기에 영향을 준다. 행복을 누가(기억 안 난다) 정의하기를 '생존의 기회'라고 했다. 생존의 가능성이 커질 때 행복하다는 것이다. 생존 가능성의 크기가 아니 확률이 행복의 크기와 비례한다.

아주 먼 옛날 허기진 호모 사피엔스가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리고 행복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있을 리 없다. 그래서 일단 먹을 수 있는 만큼 실컷 먹었다. 뷔페 음식점에서 먹듯이... 나는 항상 허기졌던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이다.

정년을 앞둔 그리고 살만큼 산 이 나이에 뷔페 음식점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과식을 피해 건강을 지켜 생존의 기회를 늘려야 행복해진다. 그리고 인생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이나 생산적인 것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 정신적 건강도 지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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