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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Jan 31. 2021

엘 칼라파테


https://youtu.be/1SYWimTXSdA

El Calafate Touch Down

비행기가 곧 착륙한다는 방송이 나온다. 아르헨티나 엘 칼라파테다. 드디어 파타고니아에 도착한다. 서울을 떠난 지 거의 40시간 만이다. 정말 멀다. 내 평생 이렇게 먼 거리는 처음이다. 뉴욕의 JFK 공항에서 환승하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 공항에서 환승하여 여기까지 왔다.


아버지는 나를 왜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일까?


거의 지구 반대편이다. 초등학교 지리 시간에 한국에서 땅을  파고 지구 중심을 지나 반대편으로 나오면 우루과이 앞바다라고 했었다. 내 인생에서 거기까지 갈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소위 집돌이다. 어렵게 휴가를 내는 이유는 집에서 뒹굴며 편히 쉬기 위해서지 어디를 가고 싶은 마음은 1도 없다. 고생스럽게 가봐야 거기가 거기다. 아버지가 항상 얘기하던 가슴 저린 경치를 봐도 난 시큰둥했고 유럽이나 미국도 낯설기만 할 뿐 마찬가지다. 꿈에서라도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스노클링하고 낚시하기 좋은 가깝고 따뜻한 동남아 해변 정도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비행기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엘 칼라파테 갈 때는 꼭 오른쪽 창가 자리에 앉으라고 아버지가 당부했다. 랜딩기어가 빠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도 모르게 창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량한 벌판이 펼쳐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1월 초순인 지금 여기는 한여름이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여름인데도 지금 외부 기온이 20도라고 아까 기장이 방송했다. 만약 가을이나 겨울이었으면 정말 싫었을 것이다. 추운 것은 싫다. 추운 것보단 차라리 더운 것이 낫다. 황토색의 벌판 사이사이에 초록색의 키 작은 나무들이 간간이 보인다.


공항에 점점 가까이 다가가자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구글맵으로 확인하니 호수의 이름은 아르헨티나다. 크고 긴 아르헨티나 호수를 따라서 활주로가 만들어져 있다. 점점 비행기가 내려간다. 드디어 터치다운. 탑승교도 없는 작은 공항이다. 하루에 국내선 다섯 편 정도가 전부인 공항에서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 내가 한심하다. 사실 이렇게 작은 공항에 내려보긴 처음이다. 회사의 업무 출장은 전부 대도시이고 어릴 때 온 가족이 여행 다닐 때도 아버지는 가능한 한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에도 주로 자동차를 이용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운전하는 그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비행기가 작아서인지 부친 트렁크도 금세 나왔다. 워낙 작은 공항이라 그런지 무척 단순하고 깔끔하다. 렌터카 사무실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렌터카 회사 직원이 영어 같지 않은 영어로 한 참을 설명하는데 무슨 소린지 귀에 전혀 들리지 않는다. 깨알 같은 글씨가 가득한 서류에 사인을 열 개는 족히 한 것 같다. 오랜 시간 잠을 제대로 못 잔 데다 화장실도 못 가서 뱃속은 꾸룩 거리고 몸은 거의 녹초 상태다. 머리는 멍하다. 담배 생각만이 간절하다. 이 상황에서 숙소까지 운전은 제대로 하고 갈지 걱정이 앞선다.


누나가 이번 여행에 무척이나 동행하고 싶어 했다. 나 혼자 갈 수 있겠냐며 근심 어린 표정을 수도 없이 지었다. 결혼 전에 혼자 세계일주 여행도 했던 누나는 두 아이 때문에 꼼짝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시어머님이 중환자실에 들어가신지도 열흘이 넘었다. 이번 여행을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떠나는 날까지도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비행기 티켓팅이며 렌터카와 숙소 예약 등 여행의 모든 준비를 누나가 했다. 당연히 일정과 루트 결정까지도. 난 누나가 정해준 대로 따라가는 역할만 맡은 것이다. 임무수행하듯이.


예약한 렌터카는 1.4리터 가솔린 엔진의 폭스바겐 제타다. 그리고 수동변속기다. 자동변속기도 있으나 값이 40%나 더 비싸다며 운전병 출신인 내게 수동변속기 차량도 괜찮은지 누나가 예약 전에 물었다. 낯선 지역에서 기어 변속하는 것이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는데 파타고니아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며 수동변속기도 괜찮을 거라고 누나가 결정해 버렸다. 5만 킬로 정도 주행했으니 차량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차량 외관을 빙 둘러 비디오 촬영을 했다. 혹시라도 반납할 때 딴소리할까 걱정된다며 꼭 촬영하라고 누나가 당부했다.


차 트렁크에 짐을 싣고 드디어 담배를 한 대 물었다. 바람에 라이터불 붙이기가 쉽지 않다. 파타고니아에는 태풍보다 센 바람이 유명하다는데 한 여름에는 그래도 바람이 잦아 든다고 했다. 북쪽으로는 호수가 보이고 온통 벌판이다. 아주 멀리 낮은 산들이 보일뿐 아무것도 없다. 같이 비행기 타고 온 사람들은 이미 공항을 다 떠나 텅 빈 공항 터미널이 바람을 맞고 있을 뿐이다. 공항 건물 위 아르헨티나 국기가 세차게 떨고 있다.  


아버지는 이 바람이 그렇게 좋았단 말인가?


계속( to be continu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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