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박비에 포함된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삐그덕 거리는 나무 계단이 닳고 닳아 사람들이 밟는 가운데가 움푹 파여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밟아야 이렇게 될까? 몇 만, 몇 십만... 한국인 커플이 식사 중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확실히 알아본다. 커플의 옆 테이블에 앉았다. 가볍게 눈인사를 건넸다. 나보단 확실히 나이가 많을 것 같은 여자가 내 눈인사를 받자마자 말을 건다.
“한국분 이시죠? 혼자 오셨어요?”
“네.”
“언제 오셨어요?”
“어제 오후에 도착했습니다.” 나도 되물어야 예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쪽은요?”
“저희는 오늘 식사 후에 떠나요?”
“여기 얼마나 계시다 가시나요?”
“3박이에요. 하루는 피츠로이를 보러 엘 찰튼 갔다 오고, 어제는 모레노 빙하 트래킹 종일 하고요.”
“이제 그럼 토레스 델 파이네로 가시나요?”
“아니요. 저희는 주말을 끼워 일주일밖에 휴가를 낼 수 없었거든요. 한국 가야 해요.”
“예? 그 고통스러운 40여 시간 비행기를 타고 파타고니아에서 겨우 3박 하고 다시 40시간을 비행기 타고 가신다고요?”
“호호. 저희는 비행기 안에서 잘 자요. 파타고니아란 소설을 읽고 피츠로이와 모레노를 꼭 보고 싶어서 좀 무리를 했죠.”
여자와 내가 대화하는 동안 내 또래 같은 남자는 커피를 마시며 우리를 보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얼마나 파타고니아에 계시나요?”
“저는 2주 일정인데 일 마치는 대로 가야죠.”
“출장 오셨나 보네요?”
“그건 아니고... 끝내야 할 일이 있어요. 말씀드리긴 좀 뭐하고...”
“아. 그렇군요. 어쨌든 2주나 계신다니 부럽네요. 공항에 데려다 줄 택시가 오기로 해서 저희 먼저 일어납니다. 일 잘 마치시고...”
“예 감사합니다. 조심해서 귀국하세요.”
누나뻘 되는 여자가 웃으며 자리를 일어난다. 아무 말 없던 남자도 영혼 없는 인사 하며 일어난다. 즐거운 여행 하라고.
어릴 적 두 살 위의 누나는 내게 넘사벽이었다. 몸도 잽싸고 머리 회전도 빠른 누나를 나는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다. 아니 한 번도 맞서 본 적이 없다. 누나와 둘이 있으면 누나가 항상 내 보호자 역할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누나가 남동생을 항상 챙겨주는 것 같지만 부처님 손바닥의 손오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벌써 옛날이 되어버린 대학시절에는 동기나 후배 여자들보다 선배 누나들과 잘 어울렸다. 함께 술도 많이 마시고 누나들만 무려 넷을 태우고 마르샤를 운전해서 경포대도 갔었다.
누나가 확실히 더 편하다. 여자들은 엄마만큼은 아니지만 누나라고 불려지는 순간 머릿속의 보호본능이란 불이 켜지는 것 같다. 그런 누나들의 돌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내게 돌봄 받기를 바라는 여자들을 힘들게 상대하는 것보다 훨씬 편하다.
아버지도 내겐 넘사벽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방랑벽(?)은 가끔 이해할 수 없었다. 젊을 때도 그렇게 집을 떠나 여행을 다녔다고 했다. 사주에 물이 많아서 그렇다고 할머니가 그랬다. 사회적 죽음인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는 집에 있는 날보다 해외에 나가 돌아다닌 날이 더 많았다. 피로를 풀고 다음 여행을 위한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귀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이해 안 되는 것은 소설책을 읽으셨다. 깨알 같이 쓰인 활자들만의 집합인 그 길고 재미없는 이야기인 소설이 재미있지 않고는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을 수 없을 텐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