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거니 Feb 14. 2021

사랑

...


“넌 날 사랑하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 있니?”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다. 어색한 표정만 짓고 있다. 이런 상황이 언젠가 오리라 예상했다. 난 한 번도 사랑이란 단어를 내뱉은 적이 없다. 남녀 간의 사랑은 지속될 수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녀가 내게 기대한 것이 과연 나의 사랑일까? 목숨까지 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그녀는 언젠가 내 목숨을 요구할지도 모른단 생각이 든다. 사랑하니까.

“맞아. 난 누구도 사랑해 본 적 없어. 너도 마찬가지야.” 그녀로부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나를 깨운다. 차 안에서 기다리다 잠들었던 것이다. 룸미러를 보니 뒤에 큰 트럭이 보인다. 저 앞에는 낡은 랜드크루저가 가고 있다. 아마도 바람이 잦아들어 페리가 운항을 시작한 모양이다. 시동을 걸고 앞 차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페리 선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여섯 시간이나 운항하지 못하여  밀린 자동차들을 싣고 내리며.


페리선의 2층 선실로 올라갔다. 마젤란 해협은 바다 같지 않고 큰 강 하구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에 창문으로 눈을 돌리니 멀리 고래 두마리가 보인다. 페리를 기다리던 차 안에서 한 시간 이상 잠들었기에 정신은 아주 말짱해졌다.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페리를 탔다고 문자 했다. 적당한 숙소를 찾아달라고. 이미 시간은 오후 여섯 시건만 아직 태양은 질 생각이 없는 듯 보인다. 일몰시간을 찾아보니 아홉 시 반이다. 페리가 아직 해협을 다 건너지도 못했는데 누나로부터 문자가 왔다. Hosteria Tunkelen에 예약하고 숙박비도 지불했다며 예약 바우처까지 보내왔다. 푹 자라는 이모티콘까지. 누나와 이렇게 심적으로 가까왔던 적 있나 생각했다. 지구 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지만 지금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나다. 나의 모든 움직임을 구글맵에서 세세히 확인하면서 심지어 나의 상태를 꼼꼼히 챙기기까지 하니 말이다.


누나가 예약한 숙소까지는 겨우 30분 거리다. 오늘은 칠레 땅에서 아까 낮에 꾸던 꿈이나 계속 꾸고 싶다.


계속


이전 07화 마젤란 해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