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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15. 2021

리오 그랑데

아침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420 킬로미터 정도를 운전하여 우슈아이아까지 가야 한다. 중간 지점인 리오 그랑데에서 점심을 하고 저녁 전에 우슈아이아에 도착해야 한다. 한 여름이지만 아침 기온은 8도에 불과하다. 어제보다 바람도 잦아들고 구름들이 파란 하늘을 반쯤 가리고 있다. 한국에서 보던 구름과는 다르다. 낮은 구름과 높은 구름이 섞여 근사한 하늘을 만들고 있다. 이렇게 근사한 하늘은 10년 전 회사 입사 직전에 가족여행을 갔던 뉴질랜드에서 보고 처음인 것 같다. 사실 하늘의 구름을 올려다볼 여유 없이 10년을 산 것인지도 모르겠다.


호스텔 주차장에 10대가 넘는 오토바이들이 열 맞춰 가지런히 서 있다. 이 바람의 땅에서 오토바이로 이동한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에 틀림없다. 바람을 온전히 다 맞으며 달리는 오토바이는 충돌사고가 나면 사망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게 큰 위험을 감수하며 많은 사람들이 오토바이를 탄다. 아버지는 내게 더 이상 여한이 없는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되면 오토바이를 타라고 했다. 아직 할 일이 남았다면 참고 기다리라 했다.


여러 번 결혼할 뻔했다. 한 동안 깊이 사귀다 보면 항상 결혼 문제에 봉착한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던데 난 안 하는 쪽으로만 선택했다. 얼마나 큰지 알 수 없는 책임을 아예 떠안지 않기로 하자 그들은 전부 떠나갔다. 지금의 이 자유로운 생활에 변화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별로 아쉬울 것 없는 이 생활이 점점 습관처럼 흘러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었다. 만약 이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면 결코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쩌면 회사를 그만두기 위해 결혼하지 않고 버틴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경험한 국경 통과는 훨씬 쉬웠다. 주눅 들지도 않았다. 점점 남쪽으로 내려가고 있지만 초원지대의 풍경은 어제와 마찬가지다. 리오 그랑데가 가까워지자 왼쪽에 바다가 나타난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가 호수처럼 느껴진다. 점점 건물들이 많아지며 리오 그랑데에 들어왔다. 때 맞춰 누나한테 메시지가 왔다. 리오 그랑데에 초밥집(Shima sushi)이 딱 하나 있다고. 거기서 점심을 해결하면 좋을 거라고.


초밥은 연어와 참치 아까미 살뿐이었다. 초밥은 괜찮았다. 밥을 먹어야만 먹은 것 같은 이 식성이 문제다. 지구 반대편에서, 남극과 가까운, 그래서 사람도 별로 없는 이 버려진 마을에서 찐득한 밥을 찾기 위한 노력이 눈물겹지 않은가? 점심을 먹고 드디어 리오 그랑데를 떠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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