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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Feb 16. 2021

우슈아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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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슈아이아가 가까워오자 누나로부터 메시지가 들어온다. 오늘 잘 숙소의 예약 바우처와 저녁을 먹을 만한 식당에 대한 추천이다. 낯선 곳에서 충분한 정보 없이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부담을 누나가 전부 처리해주고 있다. 나는 정해진 임무를 수행하는 누나의 아바타가 된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생각하고 결정하고 후회하는 쳇바퀴를 돌릴 일 없이 본능적으로 운전하고 예약된 숙소를 기계적으로 찾아가고 주린 배를 시간 맞춰 채우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이 임무를 만들고 부여한 아버지는 대체 무슨 의도였을까?


파타고니아의 황량한 초원은 리오 그랑데까지 였다.  그 이후는 호수와 만년설 덮인 산이다. 산 바로 앞에 그림 같은 바다를 끼고 우슈아이아가 있다. 산 자락까지 개발된 도시는 어디에서나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바다 오른쪽으로 항구가 보이고 거대한 크루즈선 두 척이 정박해 있다. 그 뒤로는 바다를 일부 매립하여 조성한 길쭉한 공항 활주로가 보인다. 많은 관광객이 비행기로 배로 우슈아이아를 찾는다. 230여 개의 숙박시설, 150여 곳의 음식점이 이 작은 우슈아이아에 있다. 파타고니아에서 가장 활기찬 도시임에 틀림없다.


유람선 선착장과 가까운 호텔이었다. 스위스의 산장호텔을 연상시키는 건물이다. 건물 뒤쪽으로 반 정도 눈을 덮고 있는 산과 어울려 그런 생각이 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녁 9시가 넘었는데도 서쪽 하늘은 보랏빛 노을로 휘황찬란하다. 거리마다 상점과 음식점들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대륙의 땅끝이라기보다는 남극과 가장 가까운 도시라는 것이 그리고 남반구에서 해가 가장 늦게 지는 도시라는 것이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환상적인 밤을 꿈꾸며 사람들은 거리를 헤매고 음식점과 술집에서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거리를 점점 더 환상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호수 같이 잔잔한 우슈아이아 앞바다는 비글 해협이다. 다윈이 200년 전에 비글호를 타고 여기를 지나갔으려니 한다. 내일은 비글해협 유람선을 타고 내 임무의 마지막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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