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상을 치르며 많은 생각이 몰려왔다.
아버지는 만 94세를 5개월여 채우지 못하고 가셨지만, 자신의 임종에 대한 준비는 거의 안 하고 가셨다. 하신 것이라곤 1993년에 계약한 장지뿐이다. 그 당시는 아직 화장이 이렇게 보편화되기 전이라 6기의 묏자리를 큰돈 내고 마련하셨다. 6기인 이유는 아마도 나와 내 동생의 배우자까지를 고려하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렇게 일찍 준비하신 이유는 모르겠다. 2007년인가에 장지 계약자를 아버지에서 나로 변경하고 5기의 자리를 반환했다. 가족묘를 만들면 무려 24기까지의 유골함을 모실 수 있고 이미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밤 두 시 반에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3일장을 치르느라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모르고 지나갔다. 그러면서 나는 내 장례식을 미리 준비해야겠단 마음이 들었다.
1. 영정사진을 결정해 두어야 한다. 문상온 자식들의 지인들과 일가친척들이 주로 보겠지만 자식들을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정해 두어야겠다. 다행히 아버지의 영정사진은 새어머니가 오래전 사진을 원판으로 갖고 계셔서 비교적 쉽게 해결되었다. 여권사진이야 최근 3개월 이내 촬영한 사진이어야 한다지만 영정사진이 최근 모습일 이유가 없다. 나이 든 모습이 가족에겐 익숙할 수 있지만 누가 봐도 보기 좋을 때 환하게 웃는 모습의 사진을 준비해두고 싶다. 일본의 나이 든 아줌마(?)들이 사진관에서 웨딩드레스에 버금가는 옷을 입고 결혼사진 찍듯이 영정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유행이란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언제 다시 이런 사진 찍어 보겠냐고... 그렇게 자신의 영정사진을 일찍 준비하면 남은 인생에 대한 생각과 태도도 달라진다고 했다. 미리 결정한 자신의 영정사진을 침실에 걸어 두고 아침에 눈뜨면서 보게 된다면, 매일 아침마다 자연스럽게 자신의 죽음을 생각할 것이다.
오늘을 보람차고, 은혜스럽고, 즐겁고, 우아하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 들 것이다.
2. 수의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터무니없는 가격의 수의들을 자식들이 선택해야 하는 어려움을 덜어주어야 한다. 입관할 때 입힌 수의는 바로 다음 날 화장을 하면 딱 하루 입는 옷이다. 그러나 하늘나라 입장할 때 입고 있는 옷이란 환상이 있다. 계급사회에서 계급을 보여주는 가장 확실한 것이 의복이었다. 매장을 하면 수의 입고 하늘나라 간다 생각하여 좋은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내가 입던 옷 중에서 제일 좋은 옷을 수의로 정하면 된다. 옛날에는 관복 같은 비단옷이 수의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삼베니 대마니 하는 뻣뻣한 천이 수의로 사용된 역사는 매우 짧다고 어디서 읽었다. 어머니가 선택한 아버지 수의는 200만 원이 좀 안 되는 비싼 수의였다. 말리지 못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시신을 못 보겠다며 입관식에 참석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본인이 선택한 수의를 보지도 못했다. 대마로 된 비싼 수의는 여러 겹이었다. 비싸 보였다. 아버지의 시신을 여러 겹의 수의를 입히고 폭이 넓은 대마 천으로 시신 전체를 꽁꽁 동여맸다. 아버지의 시신이 미라 같았다. 입관식에 함께 참석한 내 아들과 딸에게 내 얼굴을 절대 저렇게 가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난 갑갑한 것 싫다고. 난 내가 좋아하는 편한 옷을 이미 정해두었다. 순면으로 만든 촉감 좋고 너무 편한 옷이다. 네팔을 여행할 때 사 입고 돌아다녔던 옷이다.
지금도 가끔 입으며 이렇게 촉감 좋고 편한 옷은 없다며 만족한다.
3. 관을 미리 준비할 순 없다. 10여 년 전 장인어른 가셨을 때 장례식장에서 맏사위인 내게 입관할 관을 선택하라 했었다. 비싼 나무들로 만들어진 관부터 제일 값싼 종이 재질의 지관까지 있었다. 다음날 화장할 관이기에 가볍고 값싼 지관을 선택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는 처갓집 식구들을 설득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조회사에서 관의 선택은 없다고 한다. 타기 쉬운 나무관을 사용해야 한다면서 하는 말이 바로 화장되는 것이라 좋은 관을 할 필요가 없단다.
그럼 수의는?
임종이 급작스럽기에 부고도 갑자기 날아온다. 정신없이 3일장 치르느라 슬퍼할 시간도 없이 지나가는 것이 유족에게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장례문화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전통적이라는 이런 장례문화도 엄밀히 따지고 보면 산업사회에 들어선 이후에 생긴 것이다. 길게 늘어서는 3단 화환, 검은색 넥타이 차림의 문상객들, 영정사진을 둘러싸는 하얀 국화꽃들, 향을 피우고 국화꽃을 드리고 두 번 절을 하는...
우리나라보다 확실히 앞서가는 일본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작은 장례식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단다. 20명 미만의 가족들만의 가족장, 장례식을 하루만 하는 ‘1일장’(이틀째 화장, 일본은 임종한 후 24시간 내에는 화장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고 한다.)이나 아예 장례식 없이 화장 등을 하는 직장(直葬)도 늘고 있단다. 암 투병을 했던 어떤 이는 생전에 자신의 사망 후 장례식을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남기기도 한단다. 아직 온전한 정신을 갖고 있을 때 자신의 장례식을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장례식 없이 화장 후에 따로 시간을 정해 추모식을 하기도 한단다. 난 이 방식이 좋을 것 같다.
죽는 것은 모든 호모 사피엔스의 숙명이지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본능이란 생각이 든다. 장례식뿐 아니라 제사니 차례니 하는 우리의 문화들은 기억되고 싶은 인간 마음의 산물이라고 생각한다. 멀리 떨어진 공원묘원에 납골하는 것보다 한동안 집에 안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화장 후의 유골함을 집에 보관하는 것도 일본에서는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거실 한 구석에 영정사진과 함께 유골함을 놓아둔다면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추모하는 마음이 들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