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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거니 May 12. 2021

휠체어를 누가 밀까?

미세먼지 없는 깨끗한 아침 출근 시간, 아파트 지상주차장은 붐빈다. 등교하는 초등학생들 사이로 많은 차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눈에 익은 어르신 데이케어센터 스타렉스가 내 앞을 가로막는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할머니와 휠체어를 밀고 있는 아줌마가 눈에 들어온다. 할머니는 휠체어에서 스타렉스로 옮겨진다. 그 순간 드는 생각.


내 휠체어는 누가 밀어줄까?


삼촌뻘 되는 사촌 형님 부부가 있다. 아주아주 먼 옛날 춘천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었다. 아주아주 어릴 때 일 년에 한두 번은 온 가족이 춘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경춘국도는 그래서 아주아주 익숙한 길이었다. 사촌 형은 올해 만 90세이고 치매 초기다. 형수님은 낙상하여 고관절 수술을 몇 년 전에 받으셨는데 아직도 걷지 못하신다. 형과 형수님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는데, 딸은 서울에 살고 아들은 제주도에서 산부인과를 개업하고 있다. 결국 작년에 형과 형수님은 제주도의 아들 집으로 이사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고모님과 고모부가 계셨다. 고모님은 사변 후에 늦게 결혼하셨는데 나보다 여섯 살 많은 아들을 낳으셨다. 외아들은 일찍 미국에 정착하여 고모와 고모부는 노년기를 미국에서 보내시다가 미국 땅에 묻히셨다. 올해 환갑을 맞은 동료 교수는 자식이 딸 하나뿐이다. 미국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지금 수련 중이다. 정년퇴직을 하고 미국 갈 생각이다. 내 동생도 외아들이 미국에 있다. 역시 의대 졸업하고 수련의 과정을 밟고 있다. 내 동생도 아버지가 만든 가족묘에 묻힐 가능성보다는 미국 땅에 묻힐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서울 근교 어느 골프장에서 본 광경이다. 남자가 휠체어에 앉아 골프장 전경을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다. 뒤쪽에 건장한 청년이 스마트폰을 보며 기다리고 있다. 휠체어 탄 남자는 클럽하우스 부근 골프코스 주변을 이리저리 어슬렁거린다. 골프장을 이렇게 가꾼 분이란다. 당뇨가 심해져서 갑작스럽게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단다. 왠지 짠한 마음이 들었다.


양평 부근에 골프장 가는 길에 식사하는 중국집이 있다. 친구와 나는 주문을 하고 앉아서 기다리는 중이다. 음식점은 점심시간 피크타임이라 붐빈다. 나는 출입구가 잘 보이는 쪽에 자리 잡아, 들고나가는 손님들이 잘 보인다. 야구모자와 마스크를 쓴 웬 여인이 식당 안으로 들어온다. QR 체크인을 하는 여인의 이마와 눈만 보인다. 한국사람이 아니라는 느낌이 든다. 아마도 큰 눈과 눈동자 색깔 때문이다. 붐비는 식당에 빈 테이블이라곤 바로 내 옆 테이블뿐이다. 그 여인과 할머니 한 분이 마주 보고 자리 잡았다. 아직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내 예상이 맞는지 판별이 안된다. 여인은 한 손에 자동차 키를 잡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다. 주문을 하고 마주한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데 음식점 소음 때문에 대화를 알아들을 수 없다. 식사를 마치고 입구 계산대에서 나는 그 여인이 있는 자리를 돌아보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와 여인은 마침내 마스크를 벗고 있었다. 내 예상대로다. 건강해 보이는 동남아시아 여인이 시어머니(?) 모시고 식사하러 온 것 같다.


저 여인은 어쩌면 한국 시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지도 모르겠다.


홀로 된 아버지를 집에 모시고 사는 친구가 있다. 아직은 건강하셔서 많은 것을 손수 하신다. 그래서 친구 부부와 함께 외국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러 날 함께 식사하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자주 말씀하신단다. "고맙다. 애미야. 내가 네 덕에 사는구나!" 정말 고맙다는 표현이겠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이 말을 듣는 것이 항상 부담스럽다고 했다.


홀로 남은 아버지를 내버려 둘 수 없어 합가 한 58년 개띠 어르신이 있다. '진보적 지식인'이란 책을 냈는데 일종의 자서전이다. 합가 한 처음에는 아내가 아침을 차려주고 들어갔다. 어느 날부터 자기가 아침을 차려 아버지와 함께 했단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는 아버지가 손수 아침을 차려 혼자 해결하시겠다고 했단다. 정독하진 않아 확실하진 않지만 내가 이렇게 이해한 것은 셋이 공존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 한 손에 지팡이, 그리고 다른 손은 아들 손을 잡고 외출하셨다. 음식점도 가고 그 많은 병원도 갔다. 따로 살기에 큰 아들은 주중에, 작은 아들은 주말에 각각 한 번씩이다. 집에서는 간병인의 수발을 받으셨다. 아침마다 간병인 손을 잡고 아파트 한 바퀴 산책하는 것이 유일한 운동이다. 산책 중에 간병인과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눠 드시는 것이 낙이기도 했다. 산책도 힘들어지고 휠체어도 타지 못하게 되어 마지막 병원 나들이는 결국 구급차였다.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병원에서 운명하셨다.


아버지의 휠체어는 간병인이 밀었다.

내 휠체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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