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일상인데...
코로나 팬데믹이 3년 차에 접어들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을 일상이라 하고 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사람들은 이구동성이다.
일상이란 무엇인가?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 일상이다. 작년 같은 신년, 신년 같은 내년이 일상이다. 아주 천천히 변하기에 변하지 않는 것 같은 시간이 흐르는 곳, 바로 그곳이 일상이다.
3년 차에 접어들었고, 언제 이 팬데믹이 종식될지 알 수 없다면 지금이 일상 아닐까? 팬데믹 상황이 일상이고 3년 전은 일상이 아니고 아주 특이한 상황 아니었을까?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 이전에 대단했었다. 2019년 여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이동과 교류가 있었다. 엄청난 수의 비행기가 지구 상공을 날아다니고 공항들은 여행객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여유 있는 사람들은 틈만 나면 외국여행을 떠났다. 일 년에 한 번 있는 여름휴가를 위해 직장인들은 돈을 모아 비행기표를 사고 여행을 떠났다. 삶의 목적이 사람들의 존재 이유가 여행인 듯하였다. 여행에 미친 사람들의 모임( https://www.facebook.com/groups/travelholic1/ )도 계속 회원이 늘어갔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었다. 방학만 되면 배낭 메고 남미와 남아프리카 공화국까지 갔었다.
많은 학생들이 교환학생으로 외국에서 공부하기를 원했고, 졸업생들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자국에서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일자리를 찾아 나라를 가리지 않고 찾아 나섰고 도저히 살 수 없는 나라에서는 엄청난 사람들이 선진국인 유럽과 미국으로 살기 위한 목숨을 건 이주를 시작하며 난민이 되기를 자처했다. 전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 같았다. 세계화란 것이 이런 것인가 보다 했다. 이것이 정상이고 당연한 줄 알았다. 일상인 줄 알았다.
코로나 발병이 보도되고 많은 나라들이 국경을 봉쇄하였다. 수많은 비행기들이 갈 곳을 잃고 지상에 멈춰 섰다. 몇 달 뒤에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인류가 이룩한 문명이 전염병을 곧 제압할 줄 알았다. 눈부신 과학의 발전이 전염병 정도는 쉽게 해결할 줄 알았다. 타미플루 같은 치료제와 독감백신 같은 백신이 바로 개발되어 큰 문제없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병원에서만 사용되던 마스크가 일상이 되고, 기다리던 백신이 개발되어 너도 나도 백신을 맞았건만 바이러스는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여 백신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모든 모임이 취소되고 네 명까지만 식사를 함께할 수 있다. 많은 업소들이 저녁 9시까지만 영업을 한지 벌써 한참 되었다. 마스크를 쓰지 않고는 거리를 다닐 수 없고, 투명한 아크릴 가림판을 사이에 두고서만 사람들 간의 대화가 가능한 것이 일상이 되었다.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으니 눈만 보일뿐 상대방의 얼굴을 알 수가 없다. 눈과 목소리만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표정을 알 수가 없다. 사람들 간의 접촉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타인이란 애초에 온갖 바이러스와 세균, 편견과 다른 생각, 동의하기 어려운 이념의 운반체다." 김원영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호모 사피엔스는 가족을 이루고 무리를 지어 사는 사회적 동물이었다. 무리라 함은 혈연으로 구성된 집단이다. 무리를 이루어 협력하며 생존했다. 생활 영역이 있고 웬만해선 그 영역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연재해 등으로 영역 안에서 생존이 불가능해지면 이웃 영역을 침략했다. 소위 전쟁을 했다. 살육이 뒤따르고 노예가 생겼다. 무리는 점점 큰 무리를 이루며 세력을 확장했고 끊임없는 전쟁을 통하여 역사를 만들었다. 부족이 생기고 국가가 생기면서 호전적인 계급사회로 변해갔다. Genocide란 대학살은 끊임없이 반복되어 일어났고 노예제도가 일상이었다.
원래 호모 사피엔스는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등의 영장류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관찰기록을 살펴보면 영장류들은 자신의 무리가 아닌 개체에 대하여 매우 호전적이다. 이웃 마을의 원숭이 또는 이웃 마을 사람과 우연히 마주친다는 것은 생존이 위협받는 일이다. 영장류 중에서는 보노보가 가장 다정하다고 한다. 그렇게 살육이 자주 자행되지 않았다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 호모 사피엔스는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전쟁과 베트남 전쟁이 있기는 했지만 인류의 역사상 가장 평화로운 시기를 우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위태위태하지만 평화가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식량인 가축은 공장에서 키워지고 공장에서 도살되고 있다. 폭발적인 수요는 가축뿐 아니라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 인간과 물건의 이동을 위한 수송용 에너지, 지구를 덮은 온갖 기계들을 작동시키는 전기에너지 등으로 인해 지구 아니 인류문명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었다.
코로나가 사망자를 만들어 인구를 줄이고 겁먹은 인간들은 접촉을 줄였다. 코로나가 지구 멸망을 지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은 사실 점막으로 하는 것 아닌가?" 정세랑의 피프티 피플에서.
베체트병(구강이나 성기의 점막에 이상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사랑을 포기한 남자의 독백이다. 코로나로 겁먹은 사람들의 접촉의 총량이 크게 줄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사람들의 눈치만 보고 산지도 한참 됐다. 사람들이 사랑을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겠지만 지구 상의 사랑의 총량이 크게 줄었음은 틀림없다. 일상이 달라졌다.
지금이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