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음 6월 말 둘째를 출산 예정이라 제 한 몸도 가누기 힘든 딸이 안쓰러워 아내가 첫째 도민이(만 39개월)를 자주 돌본다. 오후 네 시에 어린이집을 하원 시켜 내 집에 데려와 간식과 저녁을 먹이는 날이 부쩍 늘었다.
어제는 여섯 시에 퇴근하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니 도민이가 식탁에 있다가 뛰어나온다. 할아버지를 보더니 대뜸 하는 말이 가관이다.
"할아버지 미워!"
"뭔 소리야? 할아버지가 뭘 어쨌다고? 밉다니?"
"할아버지는 도민이가 좋아하는 유튜브 안보여주고 할아버지 좋아하는 것만 보자나."
"내가 언제 그랬어! 서로 하나씩 번갈아 보자고 했지."
"그래서 미워! 도민이 좋아하는 것만 보여줘야지."
외손주를 보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것이 보인다. 만 세 살이 넘자 이제는 제법 나와 대화가 된다. 내가 밉단다. 엄마, 아빠, 할머니, 어린이집 선생님을 비롯하여 주변의 모든 어른들이 도민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주는데, 할아버지만이 유튜브를 볼 때 제동을 걸기 때문이다. 유튜브 채널을 갖고 경쟁하기 때문이다. 손주와 번갈아 좋아하는 콘텐츠를 보자고 내가 우기는 것은 세상 모든 일이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함이다. 만 세 살 손주에게 그런 고차원적인 법칙을 깨닫게 할 수 있을까 싶긴 하다. 어쩌면 선생이라는 내 직업이 갖는 고질병 인지도 모르겠다. 아무나 가르치려 드는 병!
그리고 도민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새끼 전복 여섯 마리를 마트에서 싸게 팔더라며 도민이 준다고 사 왔단다. 나도 먹을 요량으로 초고추장과 와인 한 잔을 손수 준비했다.
"자 할아버지랑 나눠 먹자."
"안돼! 도민이 꺼야. 할아버지 먹으면 안 돼!"
"엥?"
나도 좀 먹자며 젓가락으로 한 점을 집으니 갑자기 울고 불고 야단이 났다. 안된다며 달려들더니 양손으로 삶은 전복을 집어 먹기 시작한다.
"그래 안 먹을 테니 진정해! 그러다 체한다. 안 먹으면 되잖아. 도민이 아주 욕심쟁이네!"
아내도 난감해한다. 내가 초고추장을 준비하는 것을 봤으니...
"할머니도 좀 맛보자."
"그러면 할머니는 하나 먹어."
"할아버지도 하나 주자."
"안돼! 할아버지는 안돼!"
결국 아내가 도민이 밥 먹이며 도민이 한 눈 팔 때 두 점을 슬쩍해서 준다. 갑자기 할아버지인 내 처지가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다. 원래 호모 사피엔스는 아주 이기적이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어떤 짓도 할 수 있다. 타인을 배려하고 공정이니 평등이니 따위는 순전히 사회가 강요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도덕이니 정의도 자신의 생존이 확보된 뒤에나 논할 수 있는 것이다.
'인구 쇼크'란 책에서 본 내용이 생각났다. 지구의 환경변화 문제는 엄청난 인구증가에 의한 것이다. 결국 인구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지구 환경 오염과 온난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얼마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중국의 인구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의 석학과 인터뷰한 내용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인간이 어떤 본성을 갖고 태어나느냐를 놓고 철학적 논쟁이 있었습니다. 한쪽 학파는 사람이 본래 악하다고 했지요. 악한 것이 천성이라고요. 상대 학파는 우리가 본래 선하게 태어났다고 주장했고요. 내가 보기에는 양쪽 다 틀렸어요. 나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볼 때 인류가 자연의 나머지 부분, 즉 환경에 혜택을 주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을 겁니다."
결국 자신의 생존에 직접적인 위협을 느끼기 어려운 탄소중립, 기후변화와 같은 거시적인 환경문제를 호모 사피엔스들이 자발적으로 엄청난 불편을 감수하며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게 아주 천천히 멸종의 길로 걸어갈 것이다. 세 살 손주에게서 지구의 미래를 봤다면 너무 했나?